기후환경운동단체 활동가가 5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현장에서 ‘화석연료 중단’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두바이/AFP 연합뉴스
공정. ‘공평하고 올바름’이란 뜻의 이 말은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 협상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쓰인다. 특히 지금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는 주요 의제 중 하나인 ‘손실과 피해 기금’(Loss and Damage fund)을 두고 어느 나라가 얼마나 갹출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 모임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가장 최근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수준은 1850년 이래 전 세계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에 비례한다.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 1조톤마다 전 지구 표면 기온은 약 0.45도 상승한다. 지난 5일 공개된 2023년판 전 지구 탄소 예산 논문을 보면, 인류는 1850년부터 2022년까지 약 2조550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배출했다. 이는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배출량 1조7680억톤과 토지 이용 변화로 유발된 배출량 8020억톤의 합에서 시멘트 탄산화에 따른 흡수량 200억톤을 뺀 값이다. 그 결과 지구 표면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 수준보다 약 1.2도 상승했다.
온실가스로 인한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는 역사적으로 누적돼 왔다. 짧게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1750년 이후부터, 길게는 전 세계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삼림을 개간한 6천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누적된 열에너지는 지구의 대기 뿐 아니라 해양, 빙권, 육지 등 모든 부분을 데웠다. 89%가 해수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약 0.9도 올렸고, 5%가 지표를 가열했다. 4%는 빙권을 녹이고 나머지 2%는 기온 상승에 쓰였다. 아이피시시 현 의장인 짐 스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수는 2021년 한 인터뷰에서 “지구온난화는 조금이라도 추가 악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리협정을 통해 전 지구가 힘을 합쳐 막기로 합의한 지구온난화 1.5도 억제가 불가능하면 1.51도, 그것도 어려우면 1.6도를 목표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1.5도가 물 건너갔으니 2도를 다음 목표로 삼자’는 말은 지금도 인간 사회와 육지·해양 생태계에서 갖은 문제를 일으키는 전 지구적 온실효과의 파괴력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당사국총회의 최대 이슈인 손실과 피해 기금 이야기로 돌아가자. 다행히 이번 당사국총회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의 과감한 제안이 받아들여져 기금의 실행 방법이 회의 첫날인 지난달 30일 확정됐다. 그래서 이제 현장의 전 세계 기후활동가들은 각국이 지구 온난화 책임에 상응하는 금액을 제때 출연하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지구 온난화 책임에 상응하는 금액은 국가별로 얼마일까? 아이피시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손실(Losses)을 ‘관찰된 기후영향에서 오는 위해’로, 피해(Damages)는 ‘예측되는 기후위험’으로 정의한다. 당연히 전 세계 각국 모두 손실과 피해가 있다. 단 이번에 합의된 기금은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라는 고유 용어(두 단어 모두 단수형)를 써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로 지원 대상을 한정했다.
손실과 피해 기금 출범을 위해 총회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는 1억달러를 기부했다. 1850년 이후 아랍에미리트의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0.3%(55억톤)다. 만약 누적배출량 비율대로 기금을 낸다면 지금까지 4267억톤(세계의 24%)을 배출한 미국이 78억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아랍에미리트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1750만달러만 출연해 눈총을 샀다.
불행히도 미국의 무책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글로벌 탄소 예산 논문에 따르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1850~2022년에 이산화탄소 195억톤을 배출했다. 전 세계 누적배출량의 1%를 넘는다. 과연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의 3.5배가 넘는 지구온난화 유발 책임에 상응하는 기금을 부담할까? 꼭 그만큼의 기금을 내지 않더라도 기후 오염에 책임을 지는, 이 위기에 책임감을 느끼는 국민의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국가가 됐으면 좋겠다.
박훈 고려대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 연구교수(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