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크의 전 미군기지 터를 방문한 ‘2006 피스 앤 그린보트’ 참가자들이 1992년 철수한 미군이 남겨놓은 콘크리트 벙커를 살펴보고 있다.
기지반환 13년 필리핀 수비크 르포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와 군용 막사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둥근 지붕의 한층짜리 건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승용차로 2시간 남짓 걸리는 수비크 시가지는 얼핏 봐도 필리핀의 여느 도시와는 다른 흔적들을 품고 있었다.
미군경제 벗고 관광도시 탈바꿈
기지 근무 현지인들 질병에 시름
환경협정 중요성 거울 삼아야 한국 환경재단과 일본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여는 ‘피스 앤 그린보트’와 함께 지난 22일 찾은 수비크는 90년 가까이 주둔한 미군이 남겨놓은 도시의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수비크는 서울 용산기지의 80배 가량인 7천만평에 걸쳐 조성돼 있다. 그런 수비크는 쇠락한 군기지가 아닌, 분주하게 움직이는 새로운 도시였다. 미군이 활보하던 거리는 현지인들로 넘쳤고, 전투기들이 굉음을 내며 출격했을 활주로에는 민항기들이 한가롭게 서 있다. 주민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기념품을 사라고 권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수비크기지에 고용한 현지인이 4만여명이었지만, 2003년에 이미 고용규모가 이 수준을 넘어섰다. 수백 외국기업이 진출했고, 세계적인 물류회사인 페덱스는 옛 기지 안 비행장을 동아시아 물류 허브로 활용한다. 성매매 여성 6천여명이 살던 기지촌 오롱가포에도 큰 쇼핑몰이 지어졌다. 199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도시 전체가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됐다. 1991년 6월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크게 훼손됐지만 여전히 천혜의 자연을 배경 삼아 관광지로 이름을 얻고 있다. 그러나 미군 주둔이 남긴 상처는 현지인들에게 깊이 남아 있었다. 20년 동안 기지에서 포탄과 탄약고 등을 관리했다는 기카노 메리노(56)는 “오랜 기간 석면노출로 간과 신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은 10살도 안돼 원인 모르게 죽었고, 다른 두 아이는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는 “내 처지가 유별난 것도 아니고, 기지에서 일한 사람 대부분이 가족 중 한 명 이상은 이런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미군기지정화위원회’의 밀라 발도나도 사무총장은 “미군 기지에서 일한 수만명 가운데 매달 서너명이 백혈병 등을 앓다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기지 반환 당시 환경에 관한 아무런 협정도 없었다며, 어떤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수비크 시가지 부근 울창한 열대 수림에는 미군이 만든 10㎝ 두께의 콘크리트 벙커 2천여개가 화학물질 등으로 오염된 채 방치돼 있다. 수비크 지역을 둘러본 일본 안 미군 전문가 마에다 데쓰오(68) 오키나와대 겸임교수는 “기지가 반환된 지 4년 뒤인 1996년 수비크을 찾았을 때는 도시가 텅 비어 마치 유령도시 같았는데, 지금은 기지 의존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도시로 탈바꿈에 성공한 모습”이라며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 등을 안고 있는 미군기지 재조정 작업을 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에서도 참고할 것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수비크(필리핀)/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수비크(필리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기지 근무 현지인들 질병에 시름
환경협정 중요성 거울 삼아야 한국 환경재단과 일본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여는 ‘피스 앤 그린보트’와 함께 지난 22일 찾은 수비크는 90년 가까이 주둔한 미군이 남겨놓은 도시의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수비크는 서울 용산기지의 80배 가량인 7천만평에 걸쳐 조성돼 있다. 그런 수비크는 쇠락한 군기지가 아닌, 분주하게 움직이는 새로운 도시였다. 미군이 활보하던 거리는 현지인들로 넘쳤고, 전투기들이 굉음을 내며 출격했을 활주로에는 민항기들이 한가롭게 서 있다. 주민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기념품을 사라고 권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수비크기지에 고용한 현지인이 4만여명이었지만, 2003년에 이미 고용규모가 이 수준을 넘어섰다. 수백 외국기업이 진출했고, 세계적인 물류회사인 페덱스는 옛 기지 안 비행장을 동아시아 물류 허브로 활용한다. 성매매 여성 6천여명이 살던 기지촌 오롱가포에도 큰 쇼핑몰이 지어졌다. 199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도시 전체가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됐다. 1991년 6월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크게 훼손됐지만 여전히 천혜의 자연을 배경 삼아 관광지로 이름을 얻고 있다. 그러나 미군 주둔이 남긴 상처는 현지인들에게 깊이 남아 있었다. 20년 동안 기지에서 포탄과 탄약고 등을 관리했다는 기카노 메리노(56)는 “오랜 기간 석면노출로 간과 신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은 10살도 안돼 원인 모르게 죽었고, 다른 두 아이는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는 “내 처지가 유별난 것도 아니고, 기지에서 일한 사람 대부분이 가족 중 한 명 이상은 이런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미군기지정화위원회’의 밀라 발도나도 사무총장은 “미군 기지에서 일한 수만명 가운데 매달 서너명이 백혈병 등을 앓다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수비크 역사박물관에는 미군들이 바다에 버린 각종 유해 쓰레기들이 전시돼 있다.
미국은 기지 반환 당시 환경에 관한 아무런 협정도 없었다며, 어떤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수비크 시가지 부근 울창한 열대 수림에는 미군이 만든 10㎝ 두께의 콘크리트 벙커 2천여개가 화학물질 등으로 오염된 채 방치돼 있다. 수비크 지역을 둘러본 일본 안 미군 전문가 마에다 데쓰오(68) 오키나와대 겸임교수는 “기지가 반환된 지 4년 뒤인 1996년 수비크을 찾았을 때는 도시가 텅 비어 마치 유령도시 같았는데, 지금은 기지 의존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도시로 탈바꿈에 성공한 모습”이라며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 등을 안고 있는 미군기지 재조정 작업을 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에서도 참고할 것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수비크(필리핀)/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수비크(필리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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