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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천상의 원시림’ 희귀동식물 보고인데, 슬로프 설치땐…

등록 2011-07-24 20:52수정 2011-07-24 22:35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장 예정지인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가리왕산 중턱의 천연 활엽수림 속에 주목 한 그루가 높게 뻗어 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장 예정지인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가리왕산 중턱의 천연 활엽수림 속에 주목 한 그루가 높게 뻗어 있다.
평창올림픽 스키장 부지 가리왕산 가보니
조선시대부터 보호림 지정
국립공원 빼곤 보존 최고
부지의 35%가 ‘보호구역’
건설위해 특별법 만들어야
“강행땐 자생지 사라질것”
가리왕산에 들어가면 숲의 미로에 빠진다. 위로는 잎이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로막고 아래로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식물들이 길을 잃게 한다. 조선시대 때부터 보호림으로 지정해 사람 출입을 막은 산이다.

강원도는 이곳에 세계적 수준의 알파인 스키 경기장을 짓겠다고 약속하고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중봉과 하봉에서 주요 슬로프 4면이 북쪽 사면을 타고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까지 내려온다. 아직 지도에만 슬로프를 그렸기 때문에 숲의 정확한 훼손 양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슬로프를 만들면 ‘바리캉’으로 머리를 민 것처럼 숲은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가리왕산 중봉 알파인 경기장
가리왕산 중봉 알파인 경기장

지난 20일 찾은 가리왕산에선 높이 20m 이상의 나무 그늘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지하의 바람이 바위 틈으로 불어나오는 풍혈 지역이기 때문이다. 황형남 정선국유림관리사무소 보호관리팀장은 “국립공원을 제외하곤 남한에서 이만큼 다양한 수종이 보존된 활엽수림 지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하루 본 것만 해도 셀 수 없었다. 땃두릅 옆에는 만병초가, 만병초 옆에는 눈측백이 자라고 있었다. 모두 희귀식물들이다. 고무나무같이 뺀질뺀질한 초록잎을 지닌 만병초는 키가 1.5m는 됨 직했다. 웬만하면 어릴 때 죽는데, 가리왕산에선 여기저기 흔했다. 도깨비부채는 큰 잎을 얼굴처럼 화사하게 내놓고 있고, 측백나무가 누운 것처럼 눈측백이 땅 밑에서 자랐다.

가리왕산에 사는 야생동식물/1997년 겨울철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이식한 나무 생존 현황
가리왕산에 사는 야생동식물/1997년 겨울철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이식한 나무 생존 현황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산다는 주목은 슬로프 시작 지점인 중봉과 하봉 정상부뿐만 아니라 중턱에서도 자라고 있었다. 몸통을 만져보니 유난히 결이 고왔다. 정상 주변의 옛 천연보호림 구역(유전자원 보호구역의 전신) 69㏊(69만㎡)에서 산림청이 확인한 것만 475그루로, 산 중턱 등 미확인 개체까지 합치면 수백 그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도 자랐다. 가리왕산 식생을 연구중인 오승환 국립수목원 박사는 “보통 사스래나무가 상층에, 거제수나무가 하층에 분포하지만, 가리왕산은 한데 섞여 자라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말했다. 특히 산림청이 1960~70년대 산림 관리 차원의 벌목도 안 했을 정도로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다. 2004~2005년 환경부 조사 결과에서도 붉은배새매, 소쩍새 등이 관찰됐고, 주민 청문조사를 통해 사향노루, 담비, 하늘다람쥐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산림청은 가리왕산 중턱에서 정상부까지 2432㏊를 ‘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개발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조선 왕실도 ‘강릉부 산삼봉표’를 세워 일반인의 채삼과 출입을 금지한 곳이다. 최선희 강원도 동계올림픽지원단 시설과장은 “가리왕산 스키장이 보호구역과 겹치는 면적은 약 92.5㏊ 정도”라고 말했다. 스키장 전체 면적의 약 35%에 이르는 크기다.

정부와 강원도는 특별법을 제정해 이런 법적 규제를 피해가겠다는 방침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알파인 경기장의 올림픽 규격을 충족시키는 곳은 국립공원 말고는 가리왕산뿐”이라며 “주목 등 희귀수목은 옮겨 심어 되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을 통해 현행 환경기준을 비켜간 적은 1997년 무주·전주 겨울유니버시아드대회와 1999년 강원 겨울아시아경기대회 등 이미 두 차례나 있었다. 1997년 대회 때에는 덕유산 설천봉에 스키장을 설치하면서 주목 253그루를 옮겨 심었지만, 2003년 살펴보니 111그루가 고사한 터였다. 이식된 구상나무 113그루는 단 한 그루도 살아남지 못했다.

국립공원을 빼곤 가리왕산이 남한에서 가장 생태적으로 우수하다는 데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더욱이 야생동물은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슬로프로 이동로가 끊겨 멸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오충현 동국대 교수(산림생태학)는 “최근엔 미생물 비료 등 기술 발전으로 나무의 이식 생존율이 높아졌지만, 자생지가 사라지고 인위적인 관리로 보살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스키장으로 인한 환경 피해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리왕산 대안은 없을까?

무주리조트, 규격 충족하지만
“경기장 간 30분” 약속 못지켜
환경단체 “파괴적은 입지찾자”

가리왕산의 생태계 피해를 줄이는 ‘솔로몬의 지혜’는 없을까?

그동안 알파인 남자활강 종목 스키장의 올림픽 기준 표고차(800~1100m)를 만족시키는 곳은 국내에서 가리왕산 한 군데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1997년 겨울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른 전북 무주군 무주리조트도 이를 충족시킨다. 무주리조트 활강코스의 표고차는 846m다. 24일 무주군 관계자는 “2004년 무주가 올림픽 유치를 준비할 때 코스 난이도가 높지 않다고 지적돼, 출발점인 정상에 철제구조물을 설치하고 하단부 종점의 지형을 깎아 표고차를 900m로 높여 난이도를 높이는 설계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과거 올림픽 개최권을 딴 뒤에도 코스 변경 등을 두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많다. 98년 일본 나가노올림픽 때엔 남자 활강코스 출발점 고도를 높이라는 국제스키연맹(FIS)의 권고를 일본 올림픽조직위가 ‘현행법 위반’이라며 거부해 국제올림픽위원회 등 삼자 간에 협의가 진행된 적이 있다. 하지만 강원도는 ‘경기장 간 이동거리 30분’이 유치권을 따내는 데 결정적이었다며, ‘무주 대안론’을 일축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리왕산 내에서 슬로프 위치를 바꾸는 방법도 쉽지 않아 보인다. 가리왕산에선 중봉과 하봉 사이의 북쪽 사면이 유일하게 표고차가 나오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초 출발점인 중봉 정상에서 300m 떨어진 곳으로 설계를 바꿨다”며 “정상부 주목 군락지를 둘러가기 때문에 피해를 꽤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경제성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이미 국내 스키장이 포화상태여서 서울에서 먼 강원도 동부 스키장은 겨울 장사도 안 된다”며 “결국 리조트와 골프장까지 지어야 채산이 맞는데 가리왕산은 자연환경이 우수해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스키장 아래 정선군 오대천 일대는 멸종위기종 수달이 서식하는 등 생태가치가 높은데다 터가 좁아서 리조트·골프장을 지으려면 대규모 산지 훼손이 불가피하다. 강원도도 이런 부담 때문에 건설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과거 국제대회 때 의제 처리를 통해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했지만, 이번에는 원칙대로 평가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이날 대안을 모색하는 공동기구를 제안했다. 녹색연합은 “알파인 경기장이 꼭 가리왕산이라는 법은 없다”며 “가장 최적의 입지가 어디인지, 환경 부하를 최소화할 방법은 없는지, 모든 대안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원도 관계자는 “실시설계 단계부터 환경단체를 참여시켜 최적의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가리왕산/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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