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주제로 해마다 열리는 유명 사진 공모전 수상작 가운데 동물을 학대해 촬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사진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서울 시민청 시민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제23회 신한환경사진전’을 관람한 한 누리꾼은 27일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은 새끼 6마리에게 애벌레를 먹이는 어미 딱새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개했다. 이 누리꾼은 “다른 사진들이 좋기에 천천히 보다가 정말 잠이 확 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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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접한 누리꾼들은 “새끼들이 일렬로 가지에 앉아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구도다”, “사람으로 치면 길거리에 애들 나란히 세워놓고 젖 먹이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둥지에서 새끼를 꺼내 나뭇가지에 올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사진을 찍었을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전문가들 “정말로 우연일 수도 있지만…”
누리꾼들이 제기하는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진 전문가와 조류 전문가의 의견을 구했다. 조류 전문가인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어미새는 새끼를 둥지 밖 한 곳에 모아놓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습성이 “천적에 새끼들을 한꺼번에 잃는 사고를 막기 위한 어미새의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사진부 이정용 기자와 김진수 기자는 “정말로 우연히 이런 장면을 포착했을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깃털 아닌 솜털이 난 새끼가 둥지 바깥으로 나오는 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정용 기자는 “자연상태라고 하기에는 프레임 안이 너무 깨끗하고, 피사체와 사진가 사이에 은폐물이 전혀 없다. 천적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딱새는 구석진 곳을 찾아 둥지를 트는 신중한 새다. 새끼를 먹일 장소로 어미가 이런 위험한 곳을 선택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Y’자로 앙상하게 뻗은 가지에 위태롭게 자리한 긴꼬리딱새 둥지를 찍은 다른 사진에서도 짧게 잘린 가지들의 흔적이 보였다. 윤순영 이사장은 “천적을 피해 어두운 골짜기의 나뭇가지 사이를 골라 둥지를 트는 긴꼬리딱새가 훤히 드러나는 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을 본 많은 전문가들은 ‘사진처럼 가지를 짧고 깔끔하게 자를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 ‘보기 좋은 사진’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진 한 장으로 사진가에 의한 동물 학대가 있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앞서 다른 사진가가 훼손한 장소를 뒤늦게 발견해 촬영했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환경’을 내건 행사의 취지에 맞지 않는 사진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이정용 기자는 “환경을 주제로 한 행사에서조차 이런 사진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다면 작품 활동을 빙자한 사진가들의 환경 파괴 행위가 나날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순영 이사장은 “환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 사진 심사위원들이 ‘보기 좋은 사진’ 위주로 작품을 고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적어도 환경 사진 공모전이라면 환경 전문가들이 심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한환경사진공모전은 신한은행 주최·환경부 후원으로 해마다 열리는 행사다. 현재 23회 참가작을 접수하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 작품들은 지난해 열린 22회 수상작이다. 이 작품들은 1차 온라인 심사를 거친 뒤 사진 전공 교수, 환경부 관계자, 언론 종사자 등으로 구성된 4명의 심사위원단을 통해 최종 심사를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해마다 예비 수상작을 대상으로 조작이나 합성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고 있으나, 일부 작품에 이러한 문제 소지가 있음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문제가 제기된 작품의 전시를 중단했으며, 올해 행사부터는 심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누리꾼들로부터 ‘동물 학대’ 의혹을 받고 있는 환경사진공모전 입상작의 전시 모습. 어미 딱새가 나뭇가지에 앉은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다. 조승현 기자
‘동물 학대’ 의혹을 받고 있는 환경사진공모전 입상작의 전시 모습(위)과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둥지 주변 나뭇가지 훼손 흔적(아래). 조승현 기자
정상적인 긴꼬리딱새 둥지의 모습. 암컷이 새끼의 배설물을 물고 둥지를 떠나고 있다. 사진=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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