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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태풍아, 넌 어쩌다 노루가 됐니?

등록 2017-08-03 10:14수정 2017-08-03 11:29

태풍 이름 짓기의 모든 것
태풍 ‘노루’가 한반도에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우리말 태풍 이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태풍 ‘노루’가 한반도에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우리말 태풍 이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이름처럼 종잡을 수 없는 진로를 보이고 있는 태풍 ‘노루’가 한반도로 접근하고 있다. 애초 일본 지역으로 향하던 제5호 태풍 ‘노루(NORU)’는 1일 한반도 쪽으로 방향을 바꿔 주말께 제주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 기상청은 태풍 노루가 3일 오전 3시 기준으로 일본 오키나와 동쪽 약 820㎞ 부근 해상을 지나며 시간당 9㎞의 속도로 우리나라를 향해 올라오는 중이라고 밝혔다. 강풍 반경은 300㎞ 이하로 ‘소형’급이지만, 최대풍속은 초속 44m 넘을 정도로 강력하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제주도나 일본으로 여행을 계획했던 시민들이 ‘노루’의 이동 경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강력한 태풍에 온화한 인상을 지닌 노루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 태풍 이름의 시작 ‘싫어하는 사람 이름 붙일 거야’

맨 처음 태풍에 이름을 붙인 이는 1900년대 초 오스트레일리아의 예보관 클레멘트 래기였다. 태풍은 일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고, 같은 지역에 동시에 하나 이상의 태풍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태풍 예보를 혼동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는 난폭한 폭풍우에 평소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이나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태풍이 공식적인 이름을 갖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폭풍을 감시하던 미 공군과 해군은 보고 싶은 부인이나 애인의 이름을 붙이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차별 논란이 일자 1978년부터는 여성과 남성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게 됐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태풍 이름을 부르게 된 건 2000년 열린 제32차 태풍위원회 총회 이후다.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태풍위원회 소속된 나라 14개국이 10개씩 제출한 140개의 태풍 이름을 28개씩 5개 조로 나눠 각 국가의 영문 알파벳 순서로 그해 발생하는 태풍에 순차적으로 붙인다. 140개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다시 1번으로 돌아온다. 태풍은 보통 한해 30여개쯤 발생하므로 모두 사용되려면 4~5년 가량이 걸린다.

우리나라가 제출한 이름인 ‘노루’는 5조에 속해있으며 올해 발생한 5번째 태풍이다.

( ▷ 140개 태풍 이름과 뜻 보기 http://typ.kma.go.kr/TYPHOON/contents/contents_04_2_2.jsp)

■ 태풍 이름,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거냥?

태풍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매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시무시한 존재지만 이름은 의외로 반대의 이미지를 지녔다. 한국이 제출한 나비,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등은 주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동식물의 이름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태풍은 한번 발생하면 어디로 지나갈지, 얼마만큼의 강도를 지닐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순하고 작은 동식물의 이름을 붙여 온화하게 지나가 주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한국과 북한이 제출한 태풍 이름에 포함된 동식물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과 북한이 제출한 태풍 이름에 포함된 동식물들.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이 내놓은 태풍 이름은 별자리다. 2010년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줬던 태풍 ‘곤파스’가 그 중 하나로, 센타우루스자리 남동쪽에 있는 ‘컴퍼스 자리(Circinus)’를 뜻한다. 중국은 신화나 전설 속 이름을 붙인 것이 눈에 띈다. 1조에 속한 태풍 ‘우쿵’은 손오공을 뜻하며, ‘위투’는 전설 속의 옥토끼를 의미한다. 그 밖에 독특한 이름으로는 채찍질을 의미하는 필리핀의 ‘하구핏’, 우유 푸딩이란 뜻의 마카오가 낸 ‘버빙카’ 등이 있다.

북한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등 동식물 이름을 제출했다. 이 가운데 2003년 발생했던 태풍 ‘매미’는 1904년 한국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거센 바람을 몰고와 132명이 죽거나 실종됐고 1만975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무서운 태풍이었다.

2일 오후 4시 기준 태풍 노루의 예상 진로. 기상청 홈페이지 갈무리
2일 오후 4시 기준 태풍 노루의 예상 진로. 기상청 홈페이지 갈무리

■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줘~ 태풍 퇴출!

태풍의 이름은 인간에 끼친 피해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매년 열리는 태풍위원회 총회에서 그 해 막대한 피해를 준 태풍의 경우, 회원국의 요청을 받아 가차없이 퇴출시킨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은 국가의 입장을 고려한 결정이자 장차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기원이 담겼다. 지금까지 모두 31개의 태풍 이름이 퇴출당했고, 한번 퇴출당한 이름은 다시 쓰이지 못한다.

대표적인 이름이 바로 ‘매미’다. 우리나라의 요청으로 2003년 이후 ‘매미’는 ‘무지개’로 대체됐다. 그해 발생한 태풍 ‘수달’ 또한 미크로네시아의 요청으로 ‘미리내’로 개명했으며, 2005년 발생한 태풍 ‘나비’는 일본의 요청으로 ‘독수리’로 바뀌었다.

태풍도 이름을 따라가는 것일까? 태풍 노루는 지난달 14일 최초 발생 뒤 두 번이나 방향을 바꾸며 13일째 ‘껑충껑충’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로를 보이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 노루의 진로는 애초 서쪽으로 치우쳐 진행될 것으로 예측됐지만 한반도 상공에 고기압이 안정적으로 머무는 데다 높은 해수면 온도로 태풍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동쪽으로 전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노루가 태풍 이름으로 남아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 태풍 ‘노루’가 3일 오전 오키나와 동쪽 해상을 지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마우스 스크롤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원하는 지역의 기상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 earth.nullschool.net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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