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사진 왕립 뷔르허르스동물원 제공.
물바람숲
지난 4월10일 네덜란드 아른험에 있는 왕립 뷔르허르스(Burgers) 동물원의 침팬지 사육장에서 침팬지들이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연못으로 둘러싸인 7000㎡의 널따란 평원에는 나무와 비계가 설치돼 있어 침팬지들이 야생에서처럼 생활한다. 이 동물원은 침팬지들의 동맹 결성 등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날 한 방송사 카메라 요원들은 드론(무인항공기)을 이용해 침팬지 무리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시험비행에 나선 드론이 나타나자 침팬지 무리는 낯선 모습과 윙윙거리는 소음에 약간 흥분된 모습이었다. 일부는 바닥에 껍질을 벗겨 먹고 버려둔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쥐었다. 4마리는 드론이 있는 쪽 비계로 올라갔다.
드론이 카메라를 달고 두번째 본비행에 나섰다. 카메라가 5m 높이의 줄로 만든 비계 위에 올라와 있던 침팬지 2마리를 클로즈업했다. 이 사육장에서 태어난 23살과 16살짜리 암컷 투시와 라이머였다. 조종사는 드론 쪽으로 다가온 투시의 왼쪽 손에 들려 있던 길이 180㎝의 나뭇가지를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투시가 두번째로 나뭇가지를 크게 휘둘러 드론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사진) 공격할 때 침팬지는 이를 드러내고 찡그린 표정을 해 이 시끄러운 침입자에 대한 적대감을 표시했다. 추락해 망가진 드론의 카메라는 계속 작동해 낚아챈 ‘먹이’를 조사하는 침팬지의 모습을 촬영했다.
얀 판호프 등 이 동물원 관계자들은 과학저널 <영장류> 3일치에 기고한 글을 통해 침팬지의 이 행동은 “사전에 계획된 방식으로 도구를 이용한 사례”라고 밝혔다. 의도적으로 적절한 크기의 나뭇가지를 골라 공격 지점으로 가져가 행동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 동물원 침팬지는 특정한 용도에 따라 크기, 형태, 무게가 다른 13가지 도구 이용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번 사례가 침팬지의 문화적 유연성과 사전 계획 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될 것”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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