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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애인

TV에 갇힌 ‘우영우’가 현실로 나오려면…장애여성 말하다 [우영우2, 어떨까]

등록 2022-08-31 08:00수정 2022-08-31 14:44

더 성장한 ‘우영우’를 위한 의견
“장애여성 겪는 일상 차별 묘사는 현실적이지만
개인·가족 책임 아닌 사회의 책임 함께 고민하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회 속 장면 갈무리. ENA채널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회 속 장면 갈무리. ENA채널 제공

[더 나은 <우영우>를 위한 이야기 셋]

상업적인 미니시리즈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 삼고, 관계성에 주목한 것.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지금껏 장애인이 등장한 드라마에 견줘 진일보했다. 방송 3회 만에 입소문을 타고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장애인이 주인공인 또 다른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었다. <우영우>도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영우> 시즌2가 시즌3이 되고, 또 다른 <우영우>로 이어진다면, 실제 장애인 배우가 ‘우영우’가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한뼘 더 성장한 시즌2를 위해 시즌1의 아쉬운 점을 ‘애정’ 담아 살펴봤다.

①드라마토크/드라마톡평가단 “시즌2를 위한 의견”

②인터뷰/성인자폐(성)자조모임 estas 장지용 “자폐인의 삶은 계속된다”

③인터뷰/장애여성공감 “장애인을 일상서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고민”
데이트를 하던 중 친구들을 만난 이준호-우영우 커플의 모습. ENA채널 제공
데이트를 하던 중 친구들을 만난 이준호-우영우 커플의 모습. ENA채널 제공

“오빠 아직도 봉사하는구나?”

“봉사는 무슨 봉사야. 아니야, 그런 거.”

<우영우> 3회에서 법무법인 ‘한바다’ 송무팀 직원 이준호(강태오)는 우영우(박은빈) 변호사와 함께 의뢰인의 집을 찾아가던 길에서 대학 후배를 만난다. ‘선남선녀’가 함께 걷고 있으면 ‘썸’이나 연인으로 오해할 만도 한데, 대학 후배는 이준호가 장애인을 위한 봉사 중이라고 단정 짓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후배는 이준호에게 “반가웠어요”라는 작별 인사를 건넨 뒤, 우영우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친다. “파이팅!” 대체 무엇을 응원하는 것일까?

우영우가 ‘천재 변호사’나 ‘여성’이 아닌, 무성적이고 봉사 대상으로서 ‘보통의 장애인’ 취급을 받는 순간. 인권단체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 활동가와 회원들이 <우영우>를 보며 장애여성의 현실과 가깝다고 공감한, 몇 안 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지난 24일 서울 천호동에 있는 공감 교육장에서 만난 진성선 공감 활동가는 “<우영우> 초반 1~4회차까지는 작가가 장애인의 일상을 공부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3회에서 길거리 이동 중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전후맥락 없이 말을 거는 건 장애여성들이 실제 많이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공감이 진행한 ‘장애여성이 말한다-친절의 조건’ 캠페인 슬로건들이 떠오른다. “동정어린 눈길. 하지만 난 불행하지 않아요/ 도와주고 싶다구요? 저에게 먼저 물어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방식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반말은 친근감의 표현이 아니라 무시의 표현이랍니다…”

지난 24일 만난 진성선 공감 활동가(왼쪽)과 나무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소장. 온라인 화면 갈무리
지난 24일 만난 진성선 공감 활동가(왼쪽)과 나무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소장. 온라인 화면 갈무리

이날 진 활동가와 함께 만난 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나무 소장은 코로나19 확진으로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했다. 1998년 창립한 공감은 장애를 이유로 사회 주변부로 분리·배제된 여성들의 문제를 알리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장애여성 인권을 향상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사회 제도를 바꾸는 데 앞장서는 일뿐만 아니라, 문화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문화제 개최는 물론, 다큐멘터리와 연극 공연 제작도 했다.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장애여성의 문화적 재현에 대한 비평 글도 잡지를 통해 꾸준히 게재했다. 2000년 발표된 이문열 작가의 소설 <아가>와 2002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 대한 비평이 대표적이다. 나무 소장은 “드라마가 재현하는 장애여성의 모습은 드라마 의도와 무관하게 또 다른 고정적인 이미지로 작용하며, 현실에서 살아가는 장애여성들에게 영향을 준다. 장애여성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문화비평을 해나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날 진성선 활동가는 인터뷰에 앞서 발달장애, 지체장애, 언어장애 등을 가진 공감 회원들과 드라마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왔다.

공감 회원·활동가들은 <우영우>가 장애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세밀하게 묘사한 점은 물론, 국내 최초로 발달장애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주인공 우영우는 공감이 매일 접하는 현실 속 발달장애여성 다수와 괴리된 캐릭터임을 짚었다. 나무 소장은 “드라마 캐릭터라는 걸 고려해야 하지만, 우영우는 다수 장애여성과 다른 위치성을 갖고 있다. 아빠가 대형로펌 대표의 학교 선배이고, 자신도 학벌 자본을 갖췄다. 현실에서 장애여성 다수는 취업 등 다양한 공적활동에 참여하여 역할을 수행하고자 해도, 기회가 보장되지 않아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21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를 보면, 15살 이상 인구 가운데 발달장애여성은 8만1916명으로 전체 장애 인구 250만여명 가운데 3.2%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취업자는 1만6328명으로, 고용률이 19.9%에 불과하다. 전체 장애 인구 고용률은 34.6%, 발달장애남성 고용률도 33.1%로 낮은데, 발달장애여성 관련 수치는 그보다도 밑도는 것이다.

지난해 공감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신아원) 거주 당사자들과 함께 긴급 탈시설 촉구 투쟁을 벌였다(왼쪽). 공감은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참여해왔다. 공감 제공
지난해 공감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신아원) 거주 당사자들과 함께 긴급 탈시설 촉구 투쟁을 벌였다(왼쪽). 공감은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참여해왔다. 공감 제공

소수 엘리트 계급으로 활약하는 발달장애여성 캐릭터의 문제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장애인이 비장애 중심 사회의 관계망에 진입하기 위해 존재 자체로 존중받기보다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방식”(나무 소장)으로 재현되는 부분이다. 공감은 장애를 ‘결함’이나 ‘무능·무력’으로 규정하는 사회를 향해 “인권은 능력이나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진 활동가는 “우영우가 3회에서 자신이 변호사로서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며 사표를 냈다가, 4회에서 친구에게 법적 도움을 주고자 복귀한 흐름을 우려스럽게 봤다. 비장애 중심 사회가 설정한 기준에 맞춰서 쓸모가 있어야만 각종 사회적 관계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인가, 장애 당사자들이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민우(주종혁) 변호사가 우영우의 무단결근을 연차소진으로 막아주는 정명석(강기영) 변호사에게 항의했을 때, 강 변호사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 능력의 문제로 선을 긋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에서 언급됐다.

그래도 우영우의 삶을 평면적이지 않게 다각도로 그려낸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나무 소장은 “장애여성이 직장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동료로서, 사적 관계에서 친구이자 애인으로 등장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민우(주종혁), 최수연(하윤경), 정명석(강기영), 이준호(강태오) 같은 주변인들이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lt;우영우&gt; 10회 장면들. ENA채널 제공
<우영우> 10회 장면들. ENA채널 제공

<우영우> 10회에는 지적장애여성 신혜영(오혜수)을 상대로 성폭력(준강간)을 한 혐의를 받는 양정일(이원정) 사건이 나온다.(▶관련 기사: 우영우 같은 친구 있다면…그 장애여성은 “제비”와 헤어졌을까) 진 활동가는 “신혜영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가 공감이 현실에서 만나는 당사자들의 모습과 더 많이 연결된다. 그런 장애인들의 삶이 시청자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지속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은 장애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권의 문제가 아닌 능력의 문제로 치환하고,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사랑 대 폭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만 사고하는 딜레마적 상황과 꾸준히 싸워왔다. 나무 소장은 “내 딸 신혜영을 어떻게든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착취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보호자(어머니)의 통제적인 방식은 장애차별적인 한국사회에서 다른 삶의 선택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권리를 침해하는 통제적 방식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에, 성폭력 현장에서는 피해자의 권리 보장과 다른 삶의 선택지를 확장하기 위해 피해자 못지않게 가족, 시설 종사자 등 주변 사람들과 긴장감 있게 소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결국 개인과 가족의 책임, 장애의 문제로만 책임을 돌리는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이러한 딜레마가 사라질 수 없다. 공감에서 <우영우>가 던진 질문을 사회구성원들이 계속해서 고민하고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나무 소장은 “드라마에서 던진 질문이 계속 토론되지 않으면 정말 그냥 판타지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왜 나의 일상에서, 학교와 직장, 동네 모임에서 장애인들을 만나볼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 이들을 동료로서 접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사회적 조건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감이 만든 발달장애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인권교육 콘텐츠 ‘내가 궁금한 성교육-연애’의 한 장면. 공감 유튜브 갈무리
공감이 만든 발달장애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인권교육 콘텐츠 ‘내가 궁금한 성교육-연애’의 한 장면. 공감 유튜브 갈무리

한국사회에서 <우영우>에 대한 열광이 커지는 것과 같은 시기에, 장애인의 교육권, 이동권 등을 실현시키기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둘러싼 차별과 혐오도 넘쳐났다. 나무 소장은 “장애인 시위를 비난하는 댓글, 발달장애 가족과 당사자의 죽음이 이어지는 현실이 ‘우영우 신드롬’과 공존했다는 사실을 <우영우> 시청자들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에 함께 발 디디며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고 말했다.

공감에서 <우영우> 시즌2에 기대하는 점도, 현실 속 장애여성의 삶과 한층 더 맞닿을 수 있는 설정이다. 나무 소장은 “문지원 작가가 <우영우>에서 전작 <증인>과는 다른 장애여성 캐릭터를 따로 만든 것처럼, 시즌2에서도 새로운 장애여성 캐릭터를 빚는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 활동가는 “<우영우>에는 장애인 말고도 성소수자, 탈북여성, 여성노동자 등 다양한 소수자가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탈북여성이 등장한 6회에서 탈북민의 한국에 정착하기 어려운 사회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 없이 모성애가 강조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게 아쉬웠다. <우영우>에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이 등장하고 사회적으로 토론이 확산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동료시민으로서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보여줄지 함께 고민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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