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림씨(앞쪽부터)와 동료 한규선씨가 지난달 31일 시설폐쇄를 앞둔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리 향유의집을 찾아 지역사회로 단독세대 주거이전을 마친 후배 시설인들이 남긴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에 있는 옛 석암베데스다요양원, 현 향유의집이 오는 30일 문을 닫는다. 거주 장애인과 직원들이 시설의 비리와 횡포, 인권유린에 맞서 2008년 투쟁에 나서 장애인 탈시설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2009년 6월, 8명의 장애인이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62일간의 노숙 농성을 벌이고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 당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진보적 인사들로 운영진을 교체하고 향유의 집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그러나 향유의집은 나아가 이젠 아예 시설 해체를 실행해 장애인들의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을 지원하는 탈시설운동의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시설은 비장애인들과 분리돼 장애인들끼리만 거주하는 대규모 수용 시설처럼 운영돼 왔다.
김동림씨가 자신이 지내던 3층 방에 앉아 시설 안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25살에 들어와 22년을 이곳에서 지냈어요. 이 방에서 5명이 함께 살았지요.” 2009년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김동림(58)씨가 지난달 31일, 시설폐쇄를 준비하는 향유의집을 다시 찾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발병한 뇌위축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김씨는 자신을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집을 떠나 이곳에 들어왔다. 그러나 석암베데스다에서 생활하면서 “‘좋은 시설’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국고보조금 횡령·인권침해 등 석암재단 비리도 심각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여러 명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 ‘시설’에서는 독립적인 생활도, 프라이버시도 없었다.
자신이 머물던 방을 찾은 한규선씨는 활동지원사에게 부탁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포/이정아 기자
2009년 그들의 힘겨운 싸움 덕분에 운영자가 바뀌고 비리도 사라졌지만, 그는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당첨된 임대아파트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빠듯한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사랑하는 미경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탈시설운동에 함께하는 동료들을 위해 틈틈이 모은 200만원을 지난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 기부했다. 시설을 나온 지난 12년 간 꿈꿨던 인생 소원들을 모두 성취했다. ‘아내와 해외여행’이라는 마지막 소원 하나만 남겨둔 채. 이날 전동휠체어를 타고 오랜만에 향유의집을 둘러본 그는 동료 한규선씨와 함께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메뉴는 매운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때론 친구와 저녁 식사 함께 하기, 산책길 막 피어난 봄 꽃망울 만나기, 일상이 주는 기쁨을 그는 매일 만난다.
지난해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2021년 장애인의 날을 맞은 오늘(20일), 아직 국회 계류중이다.
향유의집 양쪽 방에 연결된 화장실 겸 욕실. 공간을 나눠쓰기 위해 설계됐으나 이용자가 사용하는 동안 반대쪽 문이 열리는 등 불편도 많았다. 김포/이정아 기자
향유의집에는 한때 120여명이 살았다. 그러나 최근 마지막 거주인 30명이 모두 지역사회로 단독세대 주거이전을 마쳐 이달 말 시설폐쇄를 앞두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한규선씨(앞)와 김동림씨가 지난달 31일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 아래 전동휠체어를 타고 김씨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김동림씨(맨왼쪽)의 집에서 한규선씨(왼쪽 둘째)가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김동림씨가 규선씨와 매운탕을 함께 먹으며 밝게 웃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마주보는 한규선씨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퍼진다. 김포/이정아 기자
동림씨와 미경씨 부부가 함께 사랑하며 살아온 고운 순간들이 자택 벽에 나란히 걸려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김포/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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