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전국장애부모연대 주관 ‘죽음을 강요당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제’에서 참가자가 국화를 들고 있다.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도에 사는 발달장애인 4천여명 가운데 단 15명만이 지난해 행동문제 치료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발달장애인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이하 거점병원)를 이용했다. 이들은 거점병원을 가기 위해 매번 보호자와 함께 바다를 건넜다. 그중 14명은 서울까지 약 450㎞를 이동했다. 제주엔 거점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증상이 심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을 반기는 병원은 많지 않다. 장애 특성을 고려한 진료, 행동문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거점병원을 찾는 까닭이다. 거점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는 발달장애인은 제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전국 17개(1특별시·6광역시·1특별자치시·8도·1특별자치도) 광역지자체 가운데, 제주·대구·광주·대전·울산·세종·충남·경북·전남 등 9곳에 거점병원이 없다. 지난해 거점병원을 이용한 발달장애인 셋 중 한명은 거주지 이외 다른 광역지자체로 이동했다.
20일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2021년 거점병원별 발달장애인 이용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거점병원을 이용한 발달장애인 8285명 가운데 2683명(32.3%)이 주민등록상 거주 광역지자체가 아닌 다른 지자체 거점병원을 찾았다. 울산 거주 발달장애인 245명을 비롯해 경북 158명, 충남 99명 등이 먼 거리를 이동해 치료를 받은 셈이다. 복지부는 발달장애인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중증 행동문제 치료 지원을 위해 2016년부터 거점병원을 지정해 운영해왔다. 2022년 기준 전국 10곳이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는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를 설치할 수 있다.
거점병원 이용을 원하는 발달장애인은 많지만, 수가 적다 보니 진료 예약 뒤 실제 치료를 받기까지는 빠르면 한두달, 길게 1년까지 걸린다. 이러한 까닭에,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는 여러 지역 거점병원에 진료를 신청한 뒤 그중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생기면 먼 거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한양대병원·전북대병원(각 365일), 충북대병원(360일) 등은 진료를 받기까지 걸린 대기 기간이 약 1년이었다. 한양대병원과 전북대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약 2년(730일)을 기다린 환자도 있었다. 양산부산대병원(29일), 서울대병원(73.4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80일), 성남시의료원(88일) 진료 대기 기간도 1∼3개월이었다.
더구나 행동문제 치료를 위해선 장기간 주기적인 병원 방문이 필요하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의 장해련 팀장(작업치료사)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행동발달증진 치료는 통상 1년 정도 걸리고 주 2회 이상 방문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 병원에 오는 발달장애인은) 다른 지역 거주자도 있고, 같은 강원도라 해도 (태백산맥 너머) 영동지방에 사는 이들도 있다”며 “거점병원에서 먼 거리에 사는 아이들은 (발견·치료가 늦어져) 발달 지연이 보일 때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는 내년 거점병원을 2곳 더 지정한다는 계획이지만 발달장애인 의료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지난해 거점병원을 이용한 발달장애인 8285명은 전체 등록 발달장애인 25만여명(2021년 6월 기준) 가운데 극히 일부다. 강선우 의원은 “발달장애인이 어디에 살든 차별 없는 공공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국립대병원 등을 적극 활용해 광역지자체별로 최소 1곳 이상을 거점병원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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