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등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13개 단체가 주최한 간호법 강행처리 규탄 선포식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투쟁선포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사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하는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되자,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 다른 보건의료 직역단체들이 “연대파업을 불사하겠다”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와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논의하는 의료협의체 참여 중단을 밝히는 직역 갈등이 깊어지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의협·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들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의료연대)는 서울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저지 총력 투쟁 선포식’을 열고 “간호법 제정을 막기 위해 26일 10만명이 모이는 총궐기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앞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건너 뛰고 지난 2021년 발의된 간호법 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한데 대한 반발이다.
의료연대는 간호법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 바깥’으로 확장시켜, 다른 직역과 충돌을 빚을 수 있다고 반발한다. 현행 의료법(2조·33조)은 간호사의 업무를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 등의 지도 하에 이뤄지는 진료 보조’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간호법 제정안은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제1조)며,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자료수집·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제10조)라고 정의하고 있다. 의료연대는 이 조항이 간호사의 업무를 ‘의료기관 안’으로 규정한 의료법과 충돌한다고 주장한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필요하다면 의사·치과의사·간호조무사의 연대 파업까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의협은 복지부와 의료계의 필수의료 정책 관련 논의 창구인 의료현안협의체 참여도 중단할 수 있다며 국회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 12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고 의료현안협의체 등 정부와의 대화 중단을 집행부에 권고한 상태다. 이로 인해 16일 예정됐던 협의체 3차 회의는 미뤄졌다.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연 3000여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의협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간호법안의 본회의 회부로 집행부에 대한 지탄이 내부적으로도 큰 상황에서 회원들 간 찬반이 크게 갈리는 의대 증원 등을 정부와 논의하기는 무리라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응급구조사·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들 역시 간호사에 대한 처우 개선이 지역사회 의료인 수요를 간호사로 쏠리게 할 수 있다며 의협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시은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부회장(동강대 응급구조학과 교수)은 “응급구조사의 경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의사가 없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열거식으로 제한돼 있는 반면,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소방서·해양경찰·레저센터 등 의료인을 필요로 하는 지역사회 기관들이 업무 범위가 넓은 간호사만 채용해, 다른 직역들은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국회에 빠른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간협은 간호법 상의 간호사 업무 범위에 ‘의사 등의 지도 하에 시행한다’는 단서가 있는 만큼 법이 시행되더라도 간호사가 의료기관 바깥에서 맡을 수 있는 임무는 제한적이라는 주장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법은 간호사만이 아닌 ‘간호사 등’ 여러 직역의 처우개선을 법제화한다”며 “간호조무사 등 의료현장 여러 종사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역 갈등이 격화되는 만큼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이후 복지부가 직역단체들을 모아 간호법 관련 내용을 설명하거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은 없었다. 지난 9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제정 여부에 대해) 조금 더 협의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직역단체 집행부 관계자는 “갈등의 쟁점이 된 ‘지역 사회’의 범위 등에 대해 복지부가 각 직역의 의견을 모아 국회에 설명하는 노력을 했다면 단체들의 반발이 이만큼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복지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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