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 국민연금공단 누리집 갈무리
국민연금 보유 주식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좌우하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위원을 위촉할 때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등 가입자 단체의 추천 몫을 줄이는 대신, 금융투자업계 및 학회·연구기관 같은 전문가 단체 추천을 받기로 했다. 기금운용과 책임투자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지만, 정부와 재계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는 2023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조규홍 복지부 장관)를 열어 이런 내용의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 운영규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수책위는 2018년 국민연금이 도입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원칙) 실행을 위해 기금운용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 산하에 설치한 전문위원회이다. 임기 3년의 수책위 위원은 모두 9명으로 지금까지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사용자) △민주노총·한국노총(근로자) △한국공인회계사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지역가입자) 등 세 부문 가입자 단체가 각 1명씩 추천한 상근 전문위원 3명, 각 2명씩 추천한 비상근위원 6명으로 구성됐다. 개정안은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등 가입자 단체의 비상근위원 추천 몫을 각 1명씩 모두 3명을 줄이고, 전문가 단체로부터 3명을 추천받아 위원으로 위촉하도록 했다.
복지부는 이날 회의에서 운용규정 개정을 제안하며 “첫 수책위 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법률가·회계사 등 특정 분야에 집중됐고 자산운용·책임투자 전문가는 부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대노총,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이날 연 기자회견에서 “수책위를 사용자·재벌 편향적으로 개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복지부는 안건 제안 문서에서 ‘전문가 단체’ 사례로 국민연금연구원·금융투자협회·한국금융연구원 등 정부로부터 연구과제를 받아 수행하는 기관을 언급했다. 금융투자협회 회원은 증권사 등 금융투자사들이며, 한국금융연구원은 전국은행연합회를 모태로 만들어진 연구기관이다.
지난달까지 수책위 위원이었던 이상훈 변호사는 <한겨레>에 “정부가 전문가 단체로 예로 든 곳 상당수는 정부·재계의 연구용역을 맡아 이들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수책위는 (주주권 행사 때) 정권 등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됐으나, 개정안은 그런 목적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도 “(수책위는) 투자기업 주주로서 연금 가입자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데 위원 구성이 바뀌면 이러한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날 기금운용위 회의에서는 수책위 인적 구성을 바꾸는 데 대해 양대노총 소속 위원들이 반발하는 등 의결에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회의 하루 전날인 6일 오전에야 해당 안건을 위원들에게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운용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안건이 전날 급하게 공유돼 충분한 숙의 없이 의결이 급하게 진행됐다”며 “근로자 단체 쪽 위원들이 수차례 기금운용 독립성 후퇴를 우려했지만 발언이 제지당한 채 표결이 강행됐다”고 전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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