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 대표자들이 지난 5월 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 폐기를 촉구하는 투쟁 일정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30일 간호법 제정안 재표결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법 발의부터 본회의 표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거치는 지난 2년 동안 정부는 거동이 불편해 병원까지 닿지 못하고 각자 집에서 의료진을 기다리는 취약층 의료 사각지대를 메우지 못했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간호사 업무 영역을 둘러싼 보건의료인 간 갈등을 적극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탓이다.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안의 간호사 업무 범위는 기존 의료법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간호조무사·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 단체 등은 “간호사에만 특혜를 주는 법”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주요 이유(“직역 간 과도한 갈등 불러일으키고 있다”)였다. 그러나 간호사와 의사뿐 아니라 의사와 한의사(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가능 여부), 의사와 물리치료사(의사 지도 없이 물리치료 여부), 임상병리사와 응급구조사(응급구조사 업무에 심전도 측정·채혈 추가 여부) 등 직역 간 분쟁은 현행 의료법 체계에서 광범위하고 지속해서 이어져 왔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의료직역간 갈등을 어떻게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간호법안 논란이 남긴 과제 중 하나다.
“보건의료인 간 갈등 뿌리는 의사 중심 체계”
최근 <한겨레> 취재에 응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의료직역 간 갈등의 핵심 요인으로 ‘의사 중심의 의료체계’를 지목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우리 의료체계가 의사 중심으로 만들어진 탓에, 모든 게 의사 지도로 이뤄지게 돼 있다”며 “의사에 의료기관 개설권이 있으므로 (나머지 직역은) 의사에 고용돼 있고, 건강보험 재정도 의료기관에 투입되는 게 기본 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영역이 제한된 인력의 의사 중심으로 돼 있으니, 각 직역이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해도 합당한 대가를 못 받는 문제가 반복되고 이에 대한 불만이 쌓여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그동안 인력이나 병상 등 의료자원을 민간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구축한 의료체계가 직역간 갈등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민간 의료기관의 이윤 추구가 당연하게 여겨졌고, 각 직역들도 공공의 이익보단 각자의 몫을 챙기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각 직역단체들로서는 회비를 내는 회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정부 정책에 적극 개입에 나서면서 혼란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의료법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를 의료인으로 분류하고 면허로 정해진 업무만 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에는 각 의료인이 어떤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의료현장엔 의료인뿐 아니라 의사 지도 아래 진료나 검사를 하게 돼 있는 임상병리사·방사선사·물리치료사·안경사 등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같은 다양한 직역이 존재한다. 복지부는 법원 판례와 법 유권해석을 토대로 직역별 업무 범위를 판단한다. 그러나 의사 외 다른 직역 교육 수준과 전문성도 과거에 견줘 높아졌고, 의료법 규율 범위를 넘어선 의료기관 밖 의료 수요가 늘어나는 등 상황 변화를 제때 적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기존 법·제도에 제때 반영되지 못하는 환경 변화
현행 법에선 각 직역의 자격 조건을 두고, 업무도 정해놨지만 현실에선 직역 간 업무를 칼로 베듯 엄밀히 나누기 어렵다고 한다. 업무 중복은 갈등 원인이기도 하지만, 보건의료인 수가 부족한 현실에선 상호대체가 가능해 효율적인 의료체계 구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위급한 환자를 중심으로 보면, 증상에 따라 여러 단계의 의료와 돌봄이 연속적으로 이뤄져야 건강 회복이 가능하다. 분절된 직역 간 상호협력을 끌어내야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업무 범위를 정하는 공식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의료법엔 업무 영역이 모호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규정도 따로 없다”며 “2020년부터 시행한 보건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업무 영역을 정하는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주열 남서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각 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다르므로 우선 국내 현실 상황을 인정하고 국회 등 제3 기관에서 꾸린 협의체에서 직역별 직무를 재설계해야 (업무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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