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웅 교수팀이 만든 신경 오가노이드 사진. 뇌 반구처럼 모양이 잡혀 있고 뇌처럼 복잡한 내부 구조도 보인다. 선웅 제공
인간의 불로불사 욕망은 본능이다. 죽지 않고 병들지도 않는 무한한 재생 능력은 고대 신화에서부터 디시(DC)코믹스의 히어로, ‘무빙’의 초능력자까지 수많은 스토리의 소재였다. 리처드 도킨스는 ‘복제(재생산)하라’가 유전자의 절대명령이라 했으며, 인간조차도 유전자의 절대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이런 존재라면, 더 길게 살아남아 자손을 퍼트리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은 어쩔 수 없는 도리일 것이다. 고도로 복잡한 생명과학도 결국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기술들이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인간을 닮은 지적 존재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이런 욕망의 변형이다. 최근에는 몸 밖에서 사람 전체 또는 장기 일부를 닮은 인공 배양체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서 약물 개발, 질환 연구, 재생치료 등에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이를 오가노이드라고 한다. 인체 장기(Organ)에 유사하다는 의미의 접미사(oid)가 합쳐진 것으로, 오가노이드는 인체 유사 장기(생체 내 조직의 기능·구조·생리학적 특성을 모사한 구조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의 특성을 알기 쉽게 나타내기 위해 ‘미니장기’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크기가 작다는 면만 강조하게 돼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연재의 시작인 이번 글에서는 우리 몸의 장기를 아주 작은 크기로 배양하는, 의미 그대로의 ‘미니장기’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현재 기술로 우리 몸 대부분의 장기는 작은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뇌, 척수, 눈, 귀, 혀, 침샘, 식도, 위, 대장, 소장, 항문, 간, 폐, 혈관, 심장, 콩팥, 방광, 생식기, 피부(심지어 머리털까지 달려 있다!) 등 새로운 미니장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미니장기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 몸의 장기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근본적인 구성은 비슷하다. 모든 장기는 △제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상피조직 △운동을 담당하는 근육조직 △신경정보 소통에 관여하는 신경조직 △그 외 부분을 채우고 보호하는 결합조직, 이렇게 네 종류가 섞여서 구성된 복합체라 할 수 있다. 이 중 상피조직이 장기 각각의 특이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상피조직 이외의 조직 성분은 인공적인 대체재가 개발돼 있고, 없어도 장기의 핵심적인 기능이나 모양에 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장기의 특이적인 상피조직을 만드는 방법만 찾으면 미니장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피조직의 원천은 줄기세포다. 상피조직은 외부와 맞닿아 있어 늘 재생돼야 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 몸속에서 상피조직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게 줄기세포다. 장기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하거나, 아예 배아 줄기세포로부터 성체 줄기세포를 만들고 적절한 배양 조건에서 3차원으로 키우면 이 줄기세포는 미니장기가 된다. 생물학자들은 배 발생 동안 각각의 장기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인자가 무엇인지 열심히 연구해왔고, 3차원 세포 배양 기술이 발전했으며, 줄기세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등의 과학적인 진보가 더해져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미니장기 기술이 정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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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각자 개개인의 장기 조직을 조금만 뜯어내 줄기세포를 얻으면, 내 몸의 장기와 비슷한 미니장기를 체외에서 여러개 복제·배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내 장기에 있는 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며, 내게 제일 잘 맞는 약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 내 세포를 복제해 배양하는 것이므로, 타인에게서 간이나 콩팥 등의 장기 이식을 받을 필요도 없게 된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미니장기 기술은 특별하다. 다른 장기의 경우 환자로부터 조금 떼어내서(이걸 ‘생검’이라고 한다) 진단·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뇌는 생검이 불가능하므로 사람 뇌에 대한 인간 지식의 대부분은 죽은 이의 뇌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니 뇌를 이용하면 사람 뇌세포를 살아 있는 상태로 키울 수 있어, 뇌의 여러가지 특징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한테서만 나타나는 뇌질환의 특징을 간파하고, 이를 정복하기 위한 연구와 약물 개발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미니장기는 생물학적 기초 원리를 밝히고,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 약물을 찾거나 재생 치료를 위한 치료제로 사용 가능한 희망의 기술이다.
물론 아직 한계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미니장기는 실제 장기와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미니장기에서 관찰된 현상이 우리 몸속 장기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 확신 없는 발견은 과학적으로 좋은 시작일 뿐 결론은 아니다. 또 다른 한계는 ‘미니’라는 용어에 숨어 있다. 미니장기는 아무리 커도 몇 ㎜를 넘지 못하는, 쌀알보다 작은 크기다. 작아도 상관없거나 오히려 좋은 경우도 있겠지만, 작은 미니장기를 이식해서 재생치료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은 치명적 약점이다. 미니장기에는 혈관이 없어서 산소와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기 어려워 크게 키우지 못하는 것인데, 사람도 혈관이 막히면 조직 괴사가 생기는 만큼 혈관은 우리 몸 건강에 결정적이다. 미니장기에 혈관 또는 혈관 대체품을 어떻게 넣느냐도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다.
미니장기 기술은 개발된 지 채 30년이 되지 않았다. 아직은 연구하고 개척할 게 많은 영역이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지점으로 과학을 비약적으로 이끌어갈,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런 한계들이 극복된다면, 미니장기는 인류에게 아프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삶을 줄지도 모른다.
선웅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어릴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발생학에 관심이 생겨 신경발생학 분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첨단기술의 과학’, ‘생물학 명강 3’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