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2021년 9월 서울 구로구 구민회관에 마련된 접종센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외국인 지역가입자가 한 번이라도 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내국인 가입자와 달리 보험급여 지급을 중단하도록 한 국민건강보험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건보 외국인 가입자의 보험급여 제한 조항인 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 제10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즉각 무효화하면 법의 공백이 생길 수 있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의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국회가 2025년 6월30일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이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이 조항은 건보 지역가입자인 국내 체류 외국인이 보험료를 체납하면, 그 다음 달부터 보험료를 완납할 때까지 병·의원에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진료비 등을 대부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내국인 지역가입자는 6번 이상 보험료를 체납해야 보험급여가 중단되는 것과 달리 외국인은 한 번만 체납해도 즉시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또 내국인 지역가입자가 속한 세대의 월 소득과 보유 재산의 과세표준이 각각 100만원 미만이거나 체납 보험료 일부를 분할 납부하면 건보 적용이 지속되는 것과 달리, 외국인 가입자에 대해선 이런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ㄱ 씨와 시리아 국적 ㄴ 씨는 2019년 10월 헌재에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면서 “보험료는 1회만 체납해도 (건보) 보험급여를 중지시켜 의료 보장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영세 계층에게 체납에 따른 불이익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부과하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또 “외국인 지역가입자라 해서 외국인 직장가입자나 내국인보다 보험료 체납 불법성이 큰 것이 아님에도 그 불이익을 외국인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만 더욱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도 이런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헌재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내국인 등과 달리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만 1회의 보험료 체납 사실이 있기만 하면 통지 실시 없이 곧바로 보험급여를 제한하는 건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내국인 체납자에게만 적용하는 보험급여 제한 예외 조항에 대해서도 “외국인이 생명과 건강 유지에 필요한 치료 수술 등을 포기하게 만들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외국인인 청구인들을 내국인에 비해 현저히 불합리한 차별을 하고 있어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헌재는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기준이나 외국인 직장가입자 가족의 피부양자 요건을 내국인과 다르게 정한 복지부 고시 ‘장기체류 재외국민 및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기준’에 대해선 건보 재정 안정화에 기여한다며 위헌이 아니라고 봤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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