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빈대 방역에 모기·파리·바퀴벌레 퇴치에만 사용하던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출몰하는 빈대는 지금까지 써온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저항성(내성)이 강하지만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은 이보다 약하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환경부 설명을 7일 종합하면, 두 기관은 전날 방역전문가 등과 ‘빈대 발생 현황 관련 회의’를 열어 국내 방역업체가 모기·파리·바퀴벌레 퇴치에 사용하도록 승인한 디노테퓨란 등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빈대 방역용으로도 긴급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국내에서 주로 나타나는 빈대가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데, 국외 연구 등에 따르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엔 저항성이 낮아 방역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역당국은 국내에서 대규모 빈대 출몰이 오래돼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빈대 방역용으로 승인한 적은 없으나 미국 등 국외에서는 이 물질을 빈대 방역에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승인 등에 관한 규정(국립환경과학원 고시)에 따라 살충제는 유통 전에 안전성 및 효과성을 검증받는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방역당국은 이미 승인받은 제품이 있는 방역업체용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빈대 방역용으로 긴급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가정에서 사용하는 모기·파리·바퀴벌레 살충제는 빈대 방역용으로 검토하는 제품과 다르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선 가정용으로 승인된 분사형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없다”며 “이미 승인된 방역업체용 살충제를 빈대 방역용으로 긴급 승인하는 것을 우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시혁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교수는 “빈대가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저항성이 커 일반 사용량보다 1천배 이상 높은 농도로 사용해도 쉽게 죽지 않는다”라며 “반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빈대를 죽이는데 효과가 있어 방역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일부는 꿀벌을 죽이는 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을 야외에서 농작물에 대량 뿌릴 경우 꿀벌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실내에서 빈대 방역에 사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와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가 비슷한 수준이라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의 빈대 방역에 효과가 떨어져 사용량을 늘리게 되면 이 경우가 사용자에게 더 해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도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저항성이 있는 빈대라도 작용기작(약물이 생체에 대해 작용하는 원리)이 다른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엔 저항성이 낮을 수 있다”며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적정 용량·용법으로 사용하면 인체 유해성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초반 이후 국내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빈대는 올해 9월 대구의 한 대학 기숙사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발견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빈대 확산 대응을 위해 3일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정부 합동대책본부를 꾸려 이날부터 전국의 빈대 신고 상황을 파악하는 빈대 현황판 운영을 시작했다. 7일 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접수된 빈대 의심 신고는 30여건이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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