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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통증에 갇혔던 청춘 되돌리는 희망의 북소리

등록 2009-10-20 13:36수정 2009-10-20 13:49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빛드림 난타팀 정유미 팀장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빛드림 난타팀 정유미 팀장
성장 멈춘 뒤 휠체어에 갇힌 생활
무대서며 ‘병 받아들이는 법’ 배워
“공포 이기니 병은 병이 아니더라”
류머티즘 짊어지고 빛드림 난타 공연 정유미씨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까만 어둠뿐이다. 6살 때 홍역을 앓은 뒤 난데없이 시작된 통증. 그것은 칼로 살을 에는 듯했다. 이불이 스치기만 해도 ‘악’ 소리가 나와 잠을 잘 때 이불도 덮지 못했다. 근육통과 함께 열이 올랐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이었으나, 그때는 정확한 병명도 몰랐다. 그저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각종 약을 먹었다. 구역질은 반복됐고, 손가락 마디는 자꾸 휘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그렇게 성장은 멈췄다. 결국, 그는 네 바퀴를 단 의자에 자기 몸을 의지하게 됐다. 갈수록 성격은 소심해졌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은 무조건 싫었다.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빛드림 난타팀 정유미(32·사진) 팀장의 얘기다. ‘둥둥둥’ 힘차게 북을 치며 밝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과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유행하는 스모키 화장을 즐기고 댄스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는 원래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만 같다.

“엄마가 8년 전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저를 보호해주던 울타리가 없어진 거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뒤 전 세상에 나와 모든 것에 부딪혀보게 됐어요.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동안 밥 먹는 것부터 옷 입는 것까지 일상의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의지했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조차 버거웠다.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소극적인 행동에 대한 방패막이였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라진 뒤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홀로서기 과정에서 아는 동생의 권유로 우연히 장애여성 공감 ‘춤추는 허리’ 극단의 배우 오디션을 보게 됐다.

“오디션을 보면서 그동안 스스로 몰랐던 끼를 알게 됐어요. 장애여성의 일과 사랑에 관한 연극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도 생겼지요.”

연극배우 활동을 시작으로 그는 거부하고 싶었던 통증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통증을 부정하기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어차피 류머티즘 질환은 항상 통증이 있어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들을 하다 보면 즐거운 에너지가 생겨 버텨낼 수 있더군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빛드림 난타팀 정유미 팀장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빛드림 난타팀 정유미 팀장

병을 인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정적으로 사니 병은 더 이상 병이 아니었다. 어느새 꿈도 생겼다. 장애인 문화인이 되어 세상과 소통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 류머티즘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예술단에 입단해 북채를 쥔 이유는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북을 치고 나면 온몸의 관절이 말도 없이 아프고 최근에는 통증이 심해져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난타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두려움이 가장 무서운 병 같아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면 도전을 할 수 있죠. 누구나 도전을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얼굴 절반을 차지하는 붉은빛 안경테 속 커다란 눈이 반짝인다. 그가 꿈꾸는 장애인 문화인은 더는 꿈이 아니다. 지난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세계 장애인 예술축제’의 개막 행사에서 그는 북채를 힘차게 흔들며 그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그의 통증도 슬픔도 바람에 훅 날아간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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