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백혈병환우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인도대사관 앞에서 인도-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보건·환자단체들 ‘세계의 약국’ 지키기 호소
전세계 복제약의 20% 생산 맡는 인도의 특허법 노바티스 소송에 걸려
“인도-EU FTA 못막으면 지구촌 값싼 약 공급 끊길 것…한-미 FTA와도 닮은 꼴”
전세계 복제약의 20% 생산 맡는 인도의 특허법 노바티스 소송에 걸려
“인도-EU FTA 못막으면 지구촌 값싼 약 공급 끊길 것…한-미 FTA와도 닮은 꼴”
서울 한남동에 있는 주한 인도대사관은 고요한 곳이다. 그런데 28일 아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이크를 잡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도대체 한-미 협정과 인도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보건의료단체연합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도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개발도상국들에 의약품 공급이 끊기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인도와 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이나 한-미 협정은 모두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막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와 유럽연합은 내년 2월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목표로 현재 협상을 진행중이다.
지난해 2월 인도를 방문해 이 나라의 제약 정책과 제약산업 현황을 둘러본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권미란 에이즈인권연대 활동가 등의 설명을 들으면 인도는 ‘세계의 약국’이다. 120개국 이상의 개발도상국에 공급되는 에이즈 치료제의 90%가 인도에서 만든 복제약이며, 전세계에서 쓰고 있는 글리벡 같은 백혈병 치료제를 비롯해 각종 항암제, 당뇨약 등의 복제약 가운데 20%를 인도가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많은 개발도상국 환자들이 특허약의 10% 정도 가격에 약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인도의 특허법은 거대 제약회사들이 기존의 약품을 사소하게 변형해 특허 기간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복제약을 값싸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며 “이 덕분에 인도의 한 제약회사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복제약인 ‘비낫’을 생산해 글리벡 약값의 5%에 공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2001년 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의 제조사인 노바티스에 약값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때에도, 비낫이 있어 노바티스에 큰 압박이 됐다는 설명이다. 권씨는 “이처럼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특허 요건을 엄격하게 정한 인도 특허법에 대해 노바티스가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에 위배된다고 소송을 냈다”며 “마침 29일이 인도 대법원의 최종 변론이 예정된 날이어서 인도 특허법의 필요성을 알리려고 기자회견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인도의 특허법은 세계적인 의료봉사 조직인 ‘국경없는 의사회’에서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이 단체의 한국인 활동가인 김나연씨는 “인도에서 생산하는 에이즈치료제는 두세가지 약 성분이 함께 있어 특허약보다 환자들이 먹기 편한데다가 값도 훨씬 싸기 때문에 제3세계의 더 많은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며 “국제적인 에이즈치료기금도 줄고 있어 인도의 값싼 약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데 이 특허법이 무력화하면 약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들 단체들은 인도의 특허법이 자유무역협정이나 소송으로 무력화되는 것과 한-미 협정으로 국내 제약산업이 초토화되는 것이 비슷한 처지라고 본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은 “인도가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거나 노바티스가 소송에서 이겨 인도의 특허법이 무너지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환자들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며 “노바티스는 소송을 즉각 중단하고 한국과 인도는 협정을 폐기 또는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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