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충남 서천군 종천면 서천군립 노인요양병원에서 이광자 할머니가 자신이 파라핀으로 만든 동물 모양 초를 만져보고 있다.
서천군 ‘노인요양병원’ 성공비결
‘외진 곳에 만들어 뭐하냐’ 우려딛고
2년만에 적자극복 연 2억~3억 흑자
정직한 경영·단체장 의지 발판삼아
갈곳 없는 노인들 보듬는 효자노릇
공중보건의 등 진료인력 확충 숙제 “딸이 많이 보고 싶어.” 이광자(71)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고된 노동에 닳아버려 삐걱거리는 무릎 연골 소리가 났다. 이 할머니는 2010년 하나뿐인 자식인 딸을 잃었다. 스물여덟 자식이 시집도 못 가고 우울증에 그리 떠났다고 한다. 기댈 곳 없는 이 할머니는 고혈압에다 우울증까지 얻어 그해 이곳에 입원했다. 남편마저 지난해 시내버스에 치여 저세상으로 갔다. 머리숱보다 많은 날들을 할머니는 병원 식구들과 지낸다.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김밥이라는 할머니에게는 이곳이 삶을 지탱하는 ‘보행기’인 셈이다. “여기 말고 갈 데가 어디 있어….” 곁에 앉은 ‘엄마 같은 단짝’ 김상희(87) 할머니가 합죽합죽 웃는다. 만 2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간병인 황의순(60)씨는 “어르신들이 식사를 잘하시면 기분이 좋은데 안 잡수시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충남 서천군 종천면 12만여㎡ 터에 자리한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 2008년 한울타리 안에 군립 노인요양병원(사진)과 노인복지관·요양원, 장애인종합복지관과 장애인보호작업장을 만든 ‘원스톱 복지단지’다. 공공의료시설의 열악한 현실을 뚫고 이곳 노인요양병원은 2010년부터 3년째 흑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일주일 전 ‘마지막 공식 방문지’였던 노인요양병원을 18일 찾았다. 2008년 문을 연 서천군립 노인요양병원은 두 해 동안 1억~2억원씩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9000만~2억9000만원의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군청 지원금과 수익금을 보태 병상을 152개에서 200개로 늘렸다. 입원 문의가 끊이지 않아 병상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공 비결은 시설 집중과 정직한 경영, 단체장의 의지가 맞물린 결과다. 2003년 나소열 서천군수가 복지마을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외진 곳에 그런 시설을 뭐하러 만드느냐’는 반대 의견이 거셌다. 하지만 당시 군에서 65살 이상 인구가 4분의 1에 이를 만큼 고령화 현상이 심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서천군 사회복지과 김미현 주무관은 “단지 안에 시설이 모여 있어 접근성이 좋은 게 장점이다. 보호자와 환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아 나 또한 부모님을 이곳에 모시고 싶을 정도”라고 전했다. 다른 시·군에서 알음알음 찾아온 환자가 전체의 30%에 이른다.
2008년부터 위탁 운영을 맡아온 천주교 대전교구 유지재단의 헌신적인 배려도 빼놓을 수 없다. 군의 지원금이 없는 상황에서도 재단은 병원 수익금 모두를 병동 증축과 기자재 구입, 환자 편의를 위해 재투자해왔다. 해마다 전입금 1억~2억원을 병원 운영에 더 보태고 있다. 친절하고 쾌적한 환경은 물론 다달이 병원 직원들이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적은 편지와 사진을 보호자들에게 보내주는 것도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이밖에 공예품 만들기나 마사지, 그림 그리기와 다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환자들의 무료한 병원 생활을 달래준다. 최덕열 원무과장은 “입원 상담일지 하나까지도 병원장과 총원장이 모두 결재하고 꼼꼼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빛나는 흑자 행진 뒤에는 걱정거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4월까지 재활의학과 공중보건의가 근무해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돕는 게 수월했지만, 지금은 공보의가 없어 물리치료를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진료 종류나 양과 관계없이 진료비 부담이 미리 정해진 포괄수가제 탓에 병원이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환자들을 위해 마다하지 않는 형편이다. 최 과장은 “월급여가 2500만원에 이르는 재활의학과 의사를 공공의료기관에서 고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보의 충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군 지역에 병원이 있다 보니 의사는 물론 간호사나 간병인 등 전문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2011년 5월 부임한 김명렬 병원장은 “공공의료병원 자체가 설립·운영되기 어려운 구조를 놔두고 정부가 투자는커녕 흑자를 내라고만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서천/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2년만에 적자극복 연 2억~3억 흑자
정직한 경영·단체장 의지 발판삼아
갈곳 없는 노인들 보듬는 효자노릇
공중보건의 등 진료인력 확충 숙제 “딸이 많이 보고 싶어.” 이광자(71)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고된 노동에 닳아버려 삐걱거리는 무릎 연골 소리가 났다. 이 할머니는 2010년 하나뿐인 자식인 딸을 잃었다. 스물여덟 자식이 시집도 못 가고 우울증에 그리 떠났다고 한다. 기댈 곳 없는 이 할머니는 고혈압에다 우울증까지 얻어 그해 이곳에 입원했다. 남편마저 지난해 시내버스에 치여 저세상으로 갔다. 머리숱보다 많은 날들을 할머니는 병원 식구들과 지낸다.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김밥이라는 할머니에게는 이곳이 삶을 지탱하는 ‘보행기’인 셈이다. “여기 말고 갈 데가 어디 있어….” 곁에 앉은 ‘엄마 같은 단짝’ 김상희(87) 할머니가 합죽합죽 웃는다. 만 2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간병인 황의순(60)씨는 “어르신들이 식사를 잘하시면 기분이 좋은데 안 잡수시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충남 서천군 종천면 12만여㎡ 터에 자리한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 2008년 한울타리 안에 군립 노인요양병원(사진)과 노인복지관·요양원, 장애인종합복지관과 장애인보호작업장을 만든 ‘원스톱 복지단지’다. 공공의료시설의 열악한 현실을 뚫고 이곳 노인요양병원은 2010년부터 3년째 흑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일주일 전 ‘마지막 공식 방문지’였던 노인요양병원을 18일 찾았다. 2008년 문을 연 서천군립 노인요양병원은 두 해 동안 1억~2억원씩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9000만~2억9000만원의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군청 지원금과 수익금을 보태 병상을 152개에서 200개로 늘렸다. 입원 문의가 끊이지 않아 병상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천군 ‘노인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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