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범 코슬립수면의원 원장(미국 수면전문의).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습관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자칫 무리하게 바꾸려 하면 그동안 만들어진 생체리듬을 뒤흔들 수 있다. 잠도 마찬가지다. 평소 낮 근무를 하다가 근무 형태가 바뀌어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 수면리듬이 깨진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폭식 등 좋지 않은 식습관이 생겨 소화장애나 위식도역류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장기적으로는 심장 및 혈관 질환이나 암 등 중증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신홍범 코슬립수면의원 원장(미국 수면전문의)이 쓴 <교대근무 수면장애 극복하기>라는 책을 중심으로, 불가피하게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알아본다.
교대근무자, 수면장애·중증질환 위험 높아
신 원장의 책을 보면, 유럽과 북미에서는 직장인의 20%가량이 교대근무에 종사한다고 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도 전체 직장인의 10~15%가 교대근무자다. 주로 운수업이나 제조업,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교대근무 비중이 높았다.
교대근무 종사자들한테 나타나는 건강 문제는 우선 수면장애와 우울증이다. 짜증이 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불규칙한 수면과 우울한 감정은 폭식이나 음주 등과 같은 나쁜 습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밤샘근무 뒤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경우 보통 술이나 포만감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습관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결국 소화장애나 역류성식도염 같은 소화기계 질환, 뇌졸중과 같은 뇌혈관 질환, 심근경색 등 심장 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와 비행기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다른 나라의 연구 결과를 보면, 특히 여성에겐 유방암 발병 위험을 높였다. 야간에 오랜 시간 밝은 빛에 노출되면 수면 습관이 바뀌고 이와 관련된 호르몬 분비에도 변화가 생겨 빚어지는 일이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교대근무를 2급 발암 원인(물질)으로 규정했다. 2급 발암 원인은 사람한테는 발암성의 근거가 제한적으로 존재하지만, 동물한테서는 그 근거가 충분한 경우에 해당된다.
교대근무는 수면장애·우울증 등의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불가피하다면 ‘낮-저녁-밤’ 차례로 잠자는 시간을 늦춰가는 식으로 근무형태를 잡으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국내 한 대기업의 직원들이 야근을 하느라 회사 건물에 밤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맞교대근무가 수면장애 더 높여
국내에선 수면장애를 겪는 교대근무자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와 관련한 연구 결과가 없다. 외국의 조사자료를 보면 미국은 교대근무자의 10%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따져봤더니 고정적으로 야간근무만 하면 14%가, 순환교대근무를 하는 사람은 8%가 수면장애를 겪었다. 순환교대 근무도 유형에 따라 수면장애를 겪는 비율에 차이가 있었다. 1주 동안은 12시간 주간근무를 하고 그 뒤 1주 동안은 12시간 야간근무를 하는 12시간 맞교대근무의 경우 수면장애 비율이 23%로 껑충 뛰었다. 일정 주기를 두고 밤과 낮을 순차적으로 바꿔 근무하는 행태가 건강에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얘기다.
수면리듬에 맞게 교대근무 순서도 조율해야
수면장애와 같은 질환이 나타나면 교대근무를 하지 않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면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몸은 평소보다 잠자는 시간을 뒤로 미루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쉽지 않다. 적잖은 이들이 월드컵 경기를 보느라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버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서둘러 일어나는 건 힘들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3교대를 하더라도 ‘낮-저녁-밤’ 차례로 잠자는 시간을 늦추는 형태로 근무 방식을 정하면 수면장애를 줄일 수 있다. 야간근무 뒤 쉬는 날에는 4시간 정도 짧은 잠을 자고 낮에는 활동을 한 다음 그날 밤은 낮 근무 일정에 맞추면 적응이 잘된다. 밤 근무를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졸음도 많아지므로 업무시간을 낮보다 짧게 잡는 게 좋다. 12시간 맞교대근무처럼 근무시간대가 더 자주 바뀌는 경우는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으므로 되도록 이를 피해야 한다. 신홍범 원장은 “수면장애나 각종 소화기·심장·뇌혈관 질환 등이 교대근무에서 비롯된다는 걸 직장인 본인은 물론 사업주도 잘 모른다. 특히 맞교대근무는 건강에 더 해롭다. 직장인의 개인적인 노력에 더해 회사가 교대근무자의 수면장애 등 각종 위험성을 알고 이를 예방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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