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맨 앞)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앞에서 둘째) 등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 조처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매뉴얼 상 위기관리 ‘심각’ 단계…정부, ‘주의’ 고집
정진후 의원 “위기 경보 격상해 대응 체계 취해야”
정진후 의원 “위기 경보 격상해 대응 체계 취해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에 대해 확진 판정이 나오던 날 정부가 메르스에 대응하는 모의훈련을 해놓고도 정작 실제 상황에선 훈련과 다른 대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8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0일 오후 ‘2015년 재난대응 안전한국 훈련’의 일환으로 국민안전처와 교육부, 외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경찰청과 인천광역시 등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14곳과 함께 ‘해외유입 감염병 대응체계 점검을 위한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훈련에서 메르스가 사우디아라비아 입국자로부터 국내에 유입된 이후 전국으로 확산하는 상황을 설정해 최초 환자 발생부터 상황보고, 위기경보 ‘심각’ 발령, 각 기관별 역할에 따른 대응 등 전 단계별 대응태세를 점검했다.
지난달 20일은 바레인 등 중동 국가에 다녀온 환자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처음으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날이다. 보건복지부는 확진 판정 직후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개정한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과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모의 훈련 상황을 종합하면, ‘해외 신종감염병의 국내 유입 후 타지역 전파’와 ‘국내 발생 첫 환자 확진, 환자 가족 및 의료진에게 유사증상 확인’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위기 경보는 ‘경계’ 단계가 되어야 한다. 또 ‘해외 신종감염병의 전국적 확산’과 ‘전국적인 유행 확산 징후 확인 및 국민 불안 확산(총 5개 시·도, 39명 환자 발생)’, ‘환자 가족 등 밀접 접촉자 약 700명 모니터링 중이며, 유사 증상 호소자 약 30명 파악’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위기 경보는 ‘심각’ 단계로 격상해야 한다.
실제 상황에서 메르스는 8일 오전 현재 확진 환자가 87명, 사망자가 6명이다. 메르스가 전파된 지역은 첫 확진 환자가 나온 평택 외에 서울과 부산, 전북 순창 등에서 전국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격리 대상자는 이미 25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두고 있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긴급 브리핑에서 ‘현재 주의단계인 대응단계를 경계 단계로 올릴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지금 단계는 지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이런 단계는 아니고, 병원 내에서 이렇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 감염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의 단계는 그대로 유지한다”며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대응하는 조치 내용은 사실상 경계를 넘은 심각 단계 수준에 해당하는 그런 모든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후 의원은 이에 대해 “표준매뉴얼에는 해외 발생이면 관심, 국내 발생이면 주의, 타지역 전파면 경계, 전국 확산 징후면 심각 단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며 “훈련 따로 실제 따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민 불안의 상당 부분은 정부 때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전체적인 상황에 맞게 위기 경보를 격상하고, 그에 맞는 대응 체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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