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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진단한 ‘메르스의 소문과 사실’

등록 2015-06-08 15:55수정 2015-06-08 16:26

지난 6월3일 경기도 평택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고 있다. 정용일 기자
지난 6월3일 경기도 평택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한겨레 21]
전국적 확대 가능성 낮아…지역 감염 없다면 잦아들 것
만성질환·고령자는 기존 질환 치료·예방에 더 신경 써야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합니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속도보다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는 속도가 훨씬 빠른 게 2015년 6월 한국 사회의 모습입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과학에 기반한 의료지만 현실은 우왕좌왕·침소봉대·오리무중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문이 사실을 뒤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의사협회장을 지낸 노환규 박사가 동료 의사들의 조언을 모아 메르스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도움을 주는 글을 썼습니다. 최근 <한겨레21>과 기사 제휴를 시작한 <슬로우뉴스>에 게재된 글을 노 박사의 검토를 받아 재구성했습니다. _편집자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사망률·감염력

국내에서 첫 감염자가 생긴 5월20일 이후 6월5일까지 사망자는 4명입니다. 국내에 들어온 메르스 바이러스는 중동에서 유입된 것이기에 초기에는 중동에서의 메르스 활동 양상을 기준으로 메르스 바이러스의 향방을 예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 메르스는 ‘친밀한 접촉’(close contact)에 의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그래서 환자 1명의 평균 전염률이 1명 이하로 평가됐습니다. 그리고 2차 감염자로부터 또다시 감염이 일어나는 3차 감염이 의심되는 사례만 있었을 뿐 확인된 사례가 없어서 사람 사이에 전염의 단계가 넘어갈수록 독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그러나 메르스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중동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일단 우리나라는 최초 감염자 1명으로부터 전파된 2차 감염자가 30명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5명의 3차 감염자가 확인됐을뿐더러 사망자까지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메르스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변이를 일으켜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지만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사망률은 다른 바이러스 질환보다 높은 편입니다. 2013년부터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유행한 에볼라의 사망률이 40%를 조금 넘는 것을 고려할 때, 약 40%에 가까운 수치를 보인 메르스의 사망률은 에볼라에 버금갑니다. 아프리카보다 중동 지역의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시설이 낫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메르스의 치명성은 오히려 에볼라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부에서 말하듯 ‘메르스는 조금 심한 독감’이라고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망률만 보면 메르스(40%)는 독감(0.1%)의 약 400배에 이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3차 감염자가 확인된 만큼 메르스에 대한 깊은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메르스는 2012년 4월 첫 환자가 보고된 뒤 올해 5월까지 24개 나라에서 1154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431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메르스는 공기를 통한 감염이 되지 않고 3차 감염자는 있지만 그 수는 적어서, 2009년 신종플루처럼 전국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나친 동요와 염려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메르스 환자와 접촉하면 모두 감염되나?

35번 의사 환자의 아내처럼 메르스 바이러스 환자와 접촉해도 감염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순간 모든 사람이 감염되는 것이 아닙니다. 면역력에 따라 다르고, 감염된다고 하더라도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감기처럼 지나갈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메르스는 기존에 만성질환이나 콩팥·폐 등에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잘 감염되고 병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니던 병원에 가도 되나

외래로 병원을 방문해 메르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크게’ 낮습니다. 메르스 사망률은 신종플루의 400배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전파력은 국내 감염자만 100만 명 가까이 됐던 2009년 신종플루보다 ‘매우 크게’ 낮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신종플루 감염자는 당시 하루 최대 9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아직은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 제한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의학적 판단입니다. 동네 의원에서는 메르스를 진단할 방법이 아직 없습니다. 감염이 의심된다면 보건소에 전화해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35번 의사의 전파 가능성

35번째 감염 환자의 직업은 의사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14번째 메르스 환자의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를 진찰했는데 접촉 뒤 나흘 만에 증세가 발현됐습니다. 그런데 증세가 나타나서 자가 격리를 하기 전까지 병원에서 진료 활동을 지속했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하는 등 일상생활을 했기에 전파 위험성이 대두됐습니다. 그러나 그 의사는 증세가 나타난 직후부터 자진 격리 조치를 했고 곧이어 시설로 이송됐기 때문에 병원 환자나 행사 참석자에게 메르스가 전파됐을 확률은 낮습니다. 잠복기에는 바이러스 생산이 활발하지 않고 기침 등을 통해 비말(가래 등)이 나올 가능성이 적으므로 증세가 발현되기 전인 잠복기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능력, 즉 감염력은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4일 밤 발표한 대로,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의사가 타인을 감염시켰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의학적 견해입니다. 특히 잠복기에 있던 사람에 의해 개방된 장소인 행사장에서 감염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더욱 적습니다.

치료제는 무엇?

메르스가 사망률이 높을뿐더러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는 사실이 시민들을 더욱 두렵게 합니다. 그런데 ‘치료제가 없다’는 표현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치료제가 없다는 것은 메르스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직접 죽이는 특효약이 없다는 것일 뿐입니다. 항바이러스제, 2차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 면역증강제, (호흡부전이 오는 경우) 인공호흡기, 인공심폐기 등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치료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백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량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지 않아서 개발해놓은 제약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떠도는 소문의 진실

메르스 진단에 최대 15~20일이 걸린다든가, 진단 통계 또한 약 2주 전의 것을 반영한다든가, 실제 메르스 환자는 수백 명에 이른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진단에는 몇 시간이 걸립니다. 의심 환자가 폭증하고 있어서 진단에 시간이 좀더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하루이틀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돈에 눈먼 의사와 제약사가 메르스라는 병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염려할 것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메르스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두려워 환자가 크게 줄었습니다. 특별한 치료제가 없어 제약사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병원 환자들이 떠나가니 제약사도 손해입니다.

면역 활성화를 위해 영양보충제 ‘뉴트리’를 먹어야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상적 식사가 불가능한 사람에게만 도움이 됩니다. 코 밑에 바셀린을 바르면 예방이 된다는 소문도 전혀 근거 없는 허위사실에 불과합니다.

전용병원과 격리시설

정부는 뒤늦게나마 6월3일 전용병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전용병원의 가동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공공의료기관의 기능 정립이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조기 실행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격리시설의 준비 역시 님비(NIMBY) 현상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득과 보상을 병행해서 반드시 추진해야 합니다.

홍콩은 메르스 환자 1명이 거쳐간 곳에 불과하지만, 휴양시설을 격리시설로 지정하고 그곳에 격리했습니다. 우리는 격리 환자가 1500명을 넘었는데도 병원 외에 격리시설이 없습니다. 격리시설은 집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수용소가 되어서도 안 되고 격리 저항을 일으켜서도 안 됩니다. 홍콩의 초기 대응은 부러울 따름입니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1·2인실을 없애고 다인실을 늘릴 것을 병원에 주문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한 병실에 여러 환자를 가둬두고 보호자가 간병과 간호를 하는 지금의 저가 의료 위주의 의료환경을 그대로 두는 한 메르스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도움이 되는 경제적 진료는 유사시에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휴교령, 옳은가

6월5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1100곳이 넘는 학교·유치원이 휴교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학부모가 요청하면 학교 쪽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으니까요. 동의하기는 쉽습니다. 책임을 회피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대규모 휴교령은 적절하지 않은 결정입니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한편 국민의 공포심은 이해가 됩니다. 초기부터 정부가 국민과 의료진에게 필요한 정보를 감추면서 불신을 자초했고, 정보가 부족하고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국민은 자신을 지키는 자구책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예방하나

최초 메르스에 감염돼 입국한 사람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 그가 방문한 진료 공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 최초 감염자에 의해 감염된 2차 감염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거나 접촉한 사람들은 매우 많을 것입니다. 전염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메르스로 확진된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의 수를 모두 고려하면 실제 감염된 환자 수는 여전히 소수입니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학교·문화센터·대중교통까지 회피할 상황은 아직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이런 곳을 피하기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 씻기’입니다.

의사들이 권고하는 예방 조처를 소개합니다. 외출 뒤 반드시 손목 위까지 충분히 씻어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면 예방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메르스 감염 증세를 보인다면 즉시 마스크를 써서 가족 등 타인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면역력 약화를 막기 위해 폭주를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 외국 여행을 취소할 필요는 없고, 다만 공항과 항공기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별한 예방 음식은 없으며,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고령자는 기존 질환의 치료·예방에 더 신경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전망

6월5일 기준으로, 나쁜 소식은 메르스 발병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 첫 3차 감염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35번 감염 환자(의사)가 짧은 시간 환자와 접촉했는데도 감염됐다는 소식입니다. 반대로 좋은 소식은, 현재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메르스 환자는 모두 직접 접촉에 의한 환자로 기존의 전파 양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강타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종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전문가들은 직접 접촉에 의해서만 감염된다는 기존의 전파 양상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메르스 발생이 1~2주 내에 잦아들 가능성이 크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합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병원 외 ‘지역 감염’이 발생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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