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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정부, 삼성서울만 믿다가 ‘메르스 통제’ 구멍나자 패닉

등록 2015-06-18 21:57수정 2015-06-19 10:31

발병·확산 한달 돌아보니
<b>‘구멍 뚫린 마스크’ 행위극</b> 간호사, 청소노동자, 환자이송 노동자, 간병인 등이 참여한 ‘병원노동자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린 18일 오후 국회 앞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차단 실패를 규탄하며 뻥 뚫린 방역을 의미하는 ‘구멍 뚫린 마스크’를 확진환자가 나온 병원 사진 위에 붙이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구멍 뚫린 마스크’ 행위극 간호사, 청소노동자, 환자이송 노동자, 간병인 등이 참여한 ‘병원노동자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린 18일 오후 국회 앞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차단 실패를 규탄하며 뻥 뚫린 방역을 의미하는 ‘구멍 뚫린 마스크’를 확진환자가 나온 병원 사진 위에 붙이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심상치 않습니다. 세게 대응해야겠습니다’라고 보고한 게 6월1일 밤이에요. 그래서 최경환 총리대행이 6월2일 오후 1시 비행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회의에 가기 전 부랴부랴 아침 8시에 첫 긴급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했다고 합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18일 <한겨레>에 전해준 말 속에서 한달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무정부 사태’의 한 배경이 드러난다. 첫번째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건 5월20일이다. 그로부터 11일이 지나도록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감염은 제한적일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첫 확진 판정 6일 만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고, 13일 만인 3일에야 첫 메르스 관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정부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1일 밤 사망자 두 명이 발생하고 2일엔 첫 3차 감염자 두 명이 확인되는 등 숨 고를 사이도 없이 메르스 감염이 확산되고 있었다. 누리꾼들이 박 대통령 사진에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문구를 넣어 공유할 정도로 민심은 악화됐다. 정부가 7일까지 메르스 확진자 경유 병원 명단 공개를 지체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동안 불안한 국민들 사이엔 미확인 소문이 확산됐다. 박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되레 유언비어에 엄정 대처하라고 주문하며 국민의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첫 확진으로부터 12일째 돼서야
복지부 “심상찮다…세게 대응”
삼성서울 믿고 제대로 대처 안해
전문가들은 신속 대응 못해
‘격리대상자 관리 구멍’ 뒤늦게 실토
정부 패닉…감염 급속 확산

초기 방역은 물론 소통에도 실패한 정부는 ‘메르스와의 전쟁’ 최전선에 공무원 대신 전문가를 내세워 신뢰도를 높이려 했다. 매일 메르스 브리핑을 할 때도 공무원인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 실장(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과 함께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등 전문가들을 앞세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8일 전문가 중심 즉각대응팀에 ‘전권’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특히 ‘메르스 최대 감염지’가 된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은 감염내과 교수 출신으로, 정부는 물론 민간 전문가 누구도 그의 권위를 부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들이 삼성서울병원을 지나치게 믿다가 메르스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송재훈 원장이 국내에서 감염학 최고라고 하니, 송 원장이 설명하면 정부야 그 말이 맞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삼성서울병원이 경영상의 손실을 우려해 ‘병원 폐쇄’와 같은 극단적 조처를 취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지만 정부는 이를 간과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처음에 격리 대상자 범위를 정부 예상보다 넓게 잡았고 신뢰도도 높은 상황이라 정부는 이 병원의 결정에 맡겨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며칠 뒤 삼성서울병원 쪽에서 격리 대상자 선정과 관리에 구멍이 뚫린 걸 알려오자 정부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져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뒤늦게야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삼성서울병원 쪽에 돌리려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17일 송 원장을 직접 만나 “투명하게 공개해서 빨리 알리면 (중략) 책임지고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질책했다. 그러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감염을 치료하는 ‘감염학’과 감염의 원인을 밝혀내고 전파 경로를 차단하는 ‘감염역학’은 완전히 다른 분야”라며 “우리나라에서 역학조사 관련한 최고 권위 기구는 질병관리본부인데, 삼성에 맡겨두고 방치한 정부 책임이 크다”고 짚었다.

‘정부의 무능’과는 별개로, 평택성모병원이 1차 메르스 진원지가 됐을 때도 국내의 수많은 감염 전문가들이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감염자와 2m 이내, 1시간 이상 접촉’ 등 중동 지역에서 통용되던 감염 공식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했다. 이 때문에 밀접 접촉자 범위를 ‘1번 환자와 한 병실을 쓴 환자나 보호자’로 국한해 초기 방역 실패의 원인을 제공했다. 정부는 “메르스 전염력이 평균 0.6~0.8명 정도”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라 밀접 접촉자들을 시설이 아닌 자택 격리 조처 하기도 했다. 그러나 18일 오전까지 ‘14번째 환자’ 한 명이 모두 81명을 감염시킨 것으로 확인되는 등 ‘중동 메르스’ 공식이 ‘한국 메르스’에 그대로 통용되지는 않았다. 축적된 데이터가 부족한 신종 감염병의 경우엔 새로운 정보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정석인데, 전문가들은 메르스의 위험을 속단하는 잘못을 했다.

장재연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18일 의료포털 ‘청년의사’ 기고 글에서 “국내에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 메르스 환자를 제대로 진단하거나 연구해본 사람이 없고, 메르스 전문가가 있을 수 없다. 일반인만이 아니라 많은 의사들도 메르스란 질병 이름조차 이번에 처음 들어본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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