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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한국의료, 기술은 세계 정상이지만 안전시설은 후진적”

등록 2015-07-02 15:46수정 2015-07-02 16:00

성명훈 세이커칼리파 전문병원 원장(왼쪽)이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지난달 18일 오후 아랍에미리트 라스알카이머의 병원 원장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성명훈 세이커칼리파 전문병원 원장(왼쪽)이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지난달 18일 오후 아랍에미리트 라스알카이머의 병원 원장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성명훈 아랍에미리트 국립병원 세이커칼리파 원장 인터뷰
“여기는 모두 1인 병실이라 격리치료 쉽고
병원 안 감염 차단하는 의료설비도 우수
밀폐된 한국 병원은 바이러스 생존에 유리

안전은 선제적 대응 중요해 과잉반응도 필요
전염병 쉬쉬해 확산시키는 건 책임윤리에 문제”
유럽연합 프로젝트에 참여해 위험거버넌스(협치)를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한상진 명예교수는 지난달 메르스가 초기 발병한 중동의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감염확산과 위험시대에 병원운영의 문제점에 관해 세이커칼리파 전문병원의 성명훈 원장과 대담을 나누었다. 이 병원은 서울대 병원이 위탁경영하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직속의 국립전문병원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오후 아랍에미리트 라스알카이머의 병원 원장실에서 했다.

- 아랍에미리트에서 첨단 설비를 갖춘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떤 점이 눈길을 끄나?

= 이 나라에서 배울 점이 많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료분야 자료를 보면, 효율성은 한국이 세계 최고다. 싼 값으로 전국민에게 보다 많은 진료, 수술, 약 처방을 제공한다. 그러나 건강보건 투자는 부실하다. 201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강보건 지출이 한국은 7.2%지만 영국, 독일, 미국은 각각 9.4%, 11.7%, 17.2%다. 특히 의료분야 안전시설, 안전투자, 안전문화는 매우 뒤졌다. 안전이 무너지면 의료분야는 생명을 잃는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 점에서 아랍에미리트는 우리보다 앞서 있다.

- 기본으로 돌아가서 메르스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 병원은 성장의 도구가 아니라 안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아랍에미리트의 병실은 모두 1인 병실이다. 따라서 격리치료가 용이하다. 병원 안의 감염을 차단하는 의료장구, 설비가 우수하다. 진료지침도 잘 이행된다. 이것이 글로벌 기준이고 병원운영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안전문제에 투자를 꺼리고 관심을 돌린다. 의사는 안전수칙을 알고 있지만 실천에는 인색하다.

- 2003년 사스 위험 때는 성공하지 않았나?

= 사스는 홍콩, 중국 등에서 맹위를 떨쳤기 때문에 우리도 경각심이 높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넋 잃고 있다가 한방 맞은 셈이 되었다. 설마 중동의 메르스가 한국을 엄습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중동과의 빈번한 인적 교류를 생각할 때, 안일한 판단이었다.

- 메르스가 왜 유독 병원을 통해 많이 감염되는가?

=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섭씨 30도 이상의 고온에 노출되면 금방 죽는다. 그러나 20도 정도의 온도와 40% 습도에서는 2-3일간 생존한다. 많은 환자와 가족이 북적거리고 공기가 밀폐된 한국의 병원 공간은 바이러스 생존의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환자의 동선에 따라 콧물이나 기침 속의 바이러스가 여러 곳에 묻어 오래 버티는 것이다. 병원감염을 철저하게 통제했어야 하는데 이 점을 간과했다. 정부는 공개했어야 할 정보를 숨겼고 의료진은 병의 진단과 치유는커녕 바이러스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숙지 하지 못했다.

- 적극적 대응이 사회불안을 불러온다는 반론도 있다.

=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선제적 대응, 과잉반응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시민의 경각심을 고취하고 참여를 이끌 수 있다. 나의 방침을 소개하자면, 한국에서 돌아오는 모든 직원에게 이곳 병원은 메르스 검진을 실시한다.

- 메르스 사태는 병원운영의 반면교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 맞다. 안전이 무너지면 파국적 위험이 터진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 삼성 병원은 우리나라 최고 병원의 하나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로 받은 타격과 대중의 불신은 어떤 성취로도 상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 아닌가 한다.

- 조심스럽지만, 삼성 병원의 행태에 대해 느낀 점은?

= 내가 서울대 병원 기획조정실장이었을 때, 사스 문제로 고민했던 것을 소개하겠다. 사스 환자가 발생하여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것을 공개할 경우, 다른 환자가 떠나거나 오기를 꺼리면 병원수익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치료기회를 놓치는 환자가 생길 것을 걱정했다. 내가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삼성 병원도 했을 것이다. 민간병원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 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르스 같은 전염병은 ‘폭탄’과 같은 존재다. 이것이 어디 있는지를 알리고 다들 조심해야 한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 분해해야 한다. 이것을 쉬쉬 하여 전염병을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키는 것은 병원 수익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책임윤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 병원운영의 우선순위를 안전에 둔다고 할 때, 병원의 감염관리, 방역체계를 어떻게 격상시키나?

= 한국의 감염관리 체계는 2009년의 H1N1 신종플루의 도전을 거치면서 격상되었다. 국가격리병상과 음압병상이 생겼고 질병관리본부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폐가 망가졌을 때 사용하는 체외순환기가 도입되었고 의료진도 모두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았다. 그러나 그 뒤 진전이 없었다. 이제 국내 주요 병원들이 국제공인을 얻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 시설, 환자의 권리 등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 안전을 행위준칙으로 확립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겠나?

=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자문이었던 내과 의사 재원더(Gewande)는 <안전점검항목 선언>이라는 책에서 여러 제안을 한다. 존홉킨스대의 경우, 수술실에서 주사 놓을 때, 의사는 가운 입고 장갑 끼고 소독을 철저히 한다. 행위준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의사의 수술을 중지시키는 권능을 통상적으로 권한이 약한 간호사에게 주었다.

- 메르스의 도전과 충격,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 얼마 전 나를 찾아온 사우디아라비아 보건성 차관의 말을 인용하겠다. 그의 동료들이 초청을 받고 서울을 다녀왔는데,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다. 다른 나라는 1년 걸리는 일을 2주 만에 수행한다”고 했다 한다. 일리 있는 관찰이다. 메르스 위험 거버넌스가 확립되면 상황은 현저히 개선될 것이다.

인터뷰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정리 이봉현 기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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