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무서운 바이러스
40년간 주요 신종만 20여종
폭발적 감염력의 ‘신종플루’
세계 대유행 ‘팬데믹’ 가능성
“최악의 자연재해보다 더 가혹
대비않으면 1억명 사망할수도”
40년간 주요 신종만 20여종
폭발적 감염력의 ‘신종플루’
세계 대유행 ‘팬데믹’ 가능성
“최악의 자연재해보다 더 가혹
대비않으면 1억명 사망할수도”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 종식’을 선언했다. 이후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했다는 인류의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지만, 바이러스의 생명력과 확산 본능을 간과한 오판이었다. 바이러스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속도를 뛰어넘어 인류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급기야 1992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센터장 데이비드 대처 박사가 처음으로 ‘신종·재흥 감염병’을 언급하기에 이른다. 대처 박사가 “과거 20년 사이에 새롭게 출현 또는 재출현한 감염병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을 기준으로, 최근 40여년간 출현한 주요 신종 감염병만 20여종에 이른다.
■ ‘최고 치사율 90%’ 공포의 에볼라
전문가들은 1967년을 신종 바이러스의 원년으로 간주한다. 이때 독일 헤센주 마르부르크에서 ‘원인모를 질병’의 병원체가 발견됐는데, 발견지 이름을 따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독일에서 발견됐으나 발현지는 아프리카다. 독일 연구소가 우간다에서 수입한 긴꼬리 원숭이가 1차 감염원이었다. 원숭이의 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던 연구자들이 출혈열과 함께 구토·설사·신장장애 등을 일으켰다. 당시 31명이 감염돼 이 가운데 7명이 숨져 치사율 22%를 기록했다.
9년 뒤인 1976년 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 등 서아프리카에서 ‘마르부르크의 사촌’격인 바이러스에 의한 출혈열이 나타나 인류를 긴장시켰다. 수단의 누자라라는 마을에서 한 남자가 발열과 두통, 코·입·소화관 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3명의 환자한테서 감염이 확산돼 284명이 발병하고 151명이 숨졌다. 첫 환자가 살던 지역을 흐르는 강의 이름을 따 ‘에볼라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최고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에볼라는 박쥐가 자연숙주이리라 추정된다. 첫 발현 이후 40여년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을 중심으로 20차례 넘게 출현했다. 특히 2013년 12월 기니에서 발생한 에볼라는 2015년 6월24일까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만 최소 2만7443명을 감염시켰고 이 가운데 사망자가 1만1207명에 이를 정도로 유행했다. 2014년엔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미국과 스페인 등에도 상륙해 지구촌 전체가 공포에 빠졌다. 세계보건기구는 2014년 8월 에볼라 문제로는 처음으로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파비피라비르 등 바이러스의 아르엔에이(RNA) 복제를 막는 약품이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개발 단계라 위독한 환자한테 인도적 조처로 긴급 투여해 효과를 보는 수준이다.
■ 1980~90년대를 휩쓴 ‘죽음의 병’ 에이즈
확산력과 치사율 측면에서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인류를 가장 괴롭힌 건 단연 1980년대 초반 발견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다. HIV바이러스로 인한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인해 2013년말 기준으로 3900만명이 숨졌다. 전세계 누적 감염자도 7800만명에 이른다. 복수의 항HIV제를 조합해 치료하는 항레트로바이러스(ART) 치료가 개발돼 선진국에선 에이즈를 더는 ‘죽음의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이즈 감염자의 70%가 집중돼 있는 아프리카에선 여전히 국가와 공동체의 존립을 뒤흔드는 불치병이다. 저렴한 복제약들이 생산되고 있다지만, 가난한 땅 아프리카의 시민들이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투약하기엔 여전히 치료비가 부담스럽다. 세계보건기구는 2013년 현재 저소득 및 중위소득 국가의 에이즈 감염자 가운데 성인은 3분의 1, 어린이는 4분의 1만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에이즈는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1985년 처음으로 감염자가 발생한 이후 1999년까지 누적 감염자수가 1000여명 수준이었으나, 2014년 한해만 1081명이 새로 감염됐다. 지난 1일 발표된 <2014 감염병 감시 연보>를 보면 산모로부터 아기한테 옮은 ‘수직 감염’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성접촉으로 감염됐다.
■ 21세기의 복병 신종 인플루엔자
21세기 들어 전문가들은 공기 감염의 우려가 거의 없는 에볼라나 에이즈보다 오히려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신종 인플루엔자가 세계적으로 유행한다면 약 200만~5000만명이 사망한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2009년 미국·멕시코를 시작으로 세계적으로 유행한 H1N1 신종 인플루엔자의 경우 상당수 성인들이 이전에 유행한 ‘H1N1 아형(여러 동물에 감염되는 A형 바이러스 144종)’에 면역 능력을 가지고 있어 큰 화를 면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가 활발한데, 수십 년에 한번 꼴로 큰 변이가 일어나거나 복수의 바이러스가 섞여서 ‘신종 인플루엔자’가 나타난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이된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수 있는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체가 없어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팬데믹’(pandemic)이 일어날 위험이 높다. <바이러스와 감염증>(뉴턴사이언스 펴냄)을 보면, 인류는 20세기 이후 4차례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경험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등이다. 그 가운데 1918년~1919년 스페인 독감은 감염자 6억명, 사망자 2000만~5000만명을 발생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수 1000만여명을 훨씬 웃돈다.
■ 조류 인플루엔자 ‘변이’를 경계하라
최근에는 치사율이 60%에 이르는 고병원성 H5N1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H5N1의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키거나, 사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와 섞여 폭발적인 감염력을 가진 ‘신종 인플루엔자’가 생겨날 수 있어서다. H5N1 등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의한 신종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에 대비하지 않으면, 사망자가 1억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H5N1 조류 인플루엔자는 2003년 한국이 처음 발견해 세계보건기구에 보고했다. 2004년 1월엔 베트남에서 H5N1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사람 감염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가 조사해보니, 2014년 12월4일까지 사람 감염 확진자 676명 가운데 398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이 거의 60%에 이르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H5N1는 아직 사람 간 감염이 아니라 조류와 밀접 접촉을 통해 감염된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아직은 H5N1이 H1N1 같은 확산력을 지니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네이선 울프 스탠퍼드대 인간생물학과 초빙교수는 <바이러스 폭풍>(김영사 펴냄)에서 “H5N1의 치사율과 H1N1의 확산력을 지닌 바이러스는,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의 화산 폭발이나 허리케인, 지진 등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동남아시아 어딘가’를 차기 신종 인플루엔자 발현지로 예상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철새 등 조류로부터 다른 동물과 사람한테 전염될 수 있다. 조류와 동물·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바이러스의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날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선 닭·오리 등 조류와 돼지·소 등 가축을 함께 사육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있는 조류를 거래하는 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조류와 사람·동물 간에 바이러스 상호 감염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다는 얘기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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