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 의사들이 환자당 진료 시간을 줄여도 똑같은 진료비를 주겠다는 정부 방안을 두고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위)를 열어 ‘동네의원의 진찰료 차등수가제’의 폐지를 의결했다. 차등수가제는 의원에서 한 명의 의사가 하루에 환자를 75명까지 진료하면 진찰비의 100%를 건강보험에서 지급하지만, 76명부터 100명까지는 90%, 101~150명은 75%, 150명을 넘기면 절반만 지급하는 제도다. 건정심위는 의료공급자단체와 가입자단체, 공익을 대변하는 위원들이 모여 건강보험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건강세상네트워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농업경영인중앙회 등이 모인 건강보험가입자포럼은 22일 국민건강보험공단 9층 노동조합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네의원의 차등수가제 폐지 결정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한다고 밝혔다. 가입자포럼은 차등수가제를 폐지하면 그렇지 않아도 짧은 진료 시간이 더욱 짧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술적으로 75명의 환자를 의사 한 명이 진료하면 환자 1명당 6.4분을 진료하는데 150명을 진료하면 환자당 3.2분으로 짧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환자 1명당 진료시간이 줄어들게 돼, 결국 환자가 받는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우려다.
가입자포럼은 건정심위 의결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애초 차등수가제 폐지안은 지난 6월29일 열린 건정심위 안건이었는데, 당시에 무기명 비밀 투표를 한 결과 반대가 많아 부결됐다. 하지만 이 폐지안은 3개월 만에 다시 상정돼 지난 2일 건정심위에서 공개 거수 투표를 했고, 그 결과 통과됐다. 김선희 한국노총 전략기획본부 국장은 “건정심위에서 안건을 재상정할 경우 위원들에게 사전 설명을 하고 최소한 소위원회에서 집중 논의를 거쳐 본회의에 올리는 것이 그동안 관례였다. 하지만 공급자단체에만 사전설명을 하고 가입자단체와는 한마디 논의 없이 상정해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또 “지난 6월 건정심위에서 차등수가제 폐지를 반대했던 위원들이 이달 열린 회의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참했다. 게다가 공개 거수 투표를 한 것도 문제다”고 덧붙였다.
가입자단체들은 대한의사협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차등수가제 폐지를 위해 복지부가 꼼수를 부렸다고 감사 청구 배경을 설명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차등수가제 폐지는 대한의사협회의 주된 민원사항이었다. 이번 결정에서도 한의원·치과의원은 차등수가제를 유지하고 의원만 폐지해 복지부가 의사협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의결 처리를 한 의혹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쪽은 건정심위 의결 절차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차등수가제가 그동안 진료시간을 늘리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어 폐지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대신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해 우수한 의료기관에는 인센티브를 지급해 서비스 질을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2001년 차등수가제가 도입됐지만 그동안 환자들이 받는 진료시간을 적정하게 확보했다는 근거가 없고, 이비인후과 등 일부 진료과에만 차감이 집중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외래 환자 수가 더 많은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는 차등수가제가 적용되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이 환자 진료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의사당 진찰 횟수 등을 평가해 우수한 의료기관에는 의료질평가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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