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없이 집 한채만 있는데, 건보료를 매달 15만원 넘게 내야 한다. 이러다간 ‘건보료 푸어’가 될 지경이다.”
경기도 안산의 임아무개씨(60)는 지난해 11월분부터 ‘건강보험료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소득이 없는 그에겐 보험료 부담이 너무 큰 데 따른 ‘항의’ 차원이다. 임씨는 학습지 교사로 일해오다 6년전쯤 은퇴했고 현재 일정한 소득이 없다. 자녀가 없는 비혼 여성이어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그는 “정부가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바꾼다고 해 기대를 해봤지만 경감액이 크지 않더라. 최후 생계수단인 집 한채가 재산의 전부인데….”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달 30일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무소득 지역가입자의 재산 보험료 비중이 여전히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개편 내용이 ‘소득 중심 보험료 부과’라는 개편 취지를 살리기엔 역부족인 탓이다.
3일 <한겨레>가 보건복지부에 의뢰해 부과체계 개편 뒤 임씨의 건보료 변동 추정액을 뽑아봤더니, 무소득자 임씨에겐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개편 전 그의 보험료는 월 15만4790원(올해 3월분 기준)인데, 1단계 개편이 시작되는 내년 7월에는 11만6330원, 2단계(최종단계) 개편이 시행되는 2022년 7월부터 10만2240원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개편으로 연소득 50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에게 매겼던 평가소득 보험료(성·연령 등으로 추정)가 없어지고 최저보험료(1단계·월 1만3100원)로 바뀌면서 보험료가 어느 정도 인하될 예정이지만, 시가 3억원짜리 아파트에 매긴 재산 보험료는 거의 변동이 없다. 따라서 최종단계까지 개편이 이루어지더라도 여전히 10만원 이상을 납부해야 한다. 원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취지는 재산보다 소득에 매기는 보험료 비중을 높여,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덜어준다는데 있었다. 하지만 개편 뒤에도 재산 보험료 비중이 여전히 높다보니 임씨와 같은 무소득 지역가입자의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종단계까지 가더라도 재산에 대한 보험료가 면제되는 범위는 시가 1억원 이하로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임씨처럼 시가 2~3억원 정도의 집 한채만 있어도 경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재산 보험료 공제제도가 도입돼, 최종단계에서 임씨도 5천만원(과표 기준)을 공제받은 뒤 보험료가 매겨지지만 이 역시 보험료 인하 효과는 1만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과거 ‘사치품’으로 분류된 자동차에 보험료를 매긴 관행을 여전히 남겨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지금까지 15년 미만 모든 자동차에 보험료가 부과돼 왔다.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부과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완전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지만, ‘단계적 축소’로 결론이 났다. 임씨의 경우엔 갖고 있는 승용차가 1600cc 이하 소형차여서 내년 7월부터 보험료를 면제받지만 1600cc초과, 3000cc이하 승용차는 보험료가 매겨진다. 또 최종 개편이 되더라도 4천만원 이상 차량 보험료는 계속 부과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김종명 의료팀장은 “평가소득 제도가 사라짐에 따라 건보료 부담이 줄어들긴 하지만 여전히 재산과 자동차 보험료가 존재함에 따라 부담할 수 있는 능력보다 과다한 건보료가 부과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소득 기준으로 부과하는 것이 능력비례 부담이라는 사회보험 원칙에 부합하는 만큼, 완전 소득중심 개편 시점을 정부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도 “현행 재산보험료를 매기는 점수는 고액 자산가들에게 유리한 역진구조인데 이런 구조가 유지되면 불형평성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 재산 점수의 누진적 개편, 재산 상한선 폐지 등이 병행돼야 부과체계 형평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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