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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마음의 창문 여는 소통에 부모가 최고의 언어치료사”

등록 2018-01-16 19:00수정 2018-01-17 10:28

〔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임상심리전문가 박혜원 소장
<우리 아이 언어치료 부모 가이드>의 번역에 참여한 임상심리전문가 박혜원씨가 활짝 웃으며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우리 아이 언어치료 부모 가이드>의 번역에 참여한 임상심리전문가 박혜원씨가 활짝 웃으며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세상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 알고
움직임·감각·소리·냄새 등에
민감한지 둔감한지 먼저 파악

자폐아 의사소통은 4단계인데
단지 말 주고받는 것 외에도
얼굴 표정이나 몸짓·행동 등 다양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는 이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보고 느끼는지 모른다면 쉽게 지칠 수 있어요. 부모가 자폐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부모만큼 자폐아에게 좋은 언어치료사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공인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최근 <우리 아이 언어치료 부모 가이드>를 번역한 박혜원 연우심리상담소장의 말이다. 그는 이로미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 교육학과 객원교수와 조아라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와 함께 봉사의 일환으로 이 책을 번역해 지난달 초 한국판을 내놨다. 캐나다 비영리기관 하넨센터에서 진행하는 조기 언어 발달 프로그램 내용을 집대성한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아동의 부모에게 의사가 권하는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의 내용이 정말 좋아요. 어떻게 보면 ‘영업 비밀’에 해당되는 내용이 많거든요. 부모가 이 책의 내용을 활용하면 아이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출판사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어요. 다들 돈이 안 되는 책이라며 난색을 표명하더라고요. 번역자 셋 모두 번역비를 안 받는다고 해도 출판해준다는 곳이 없었어요. 마침내 출판할 곳을 찾아 한국에 소개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쁩니다.”

‘영업 비밀’ 담긴 책 번역

지난달 초 출간기념회 겸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을 위한 강연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박 소장을 만났다. 그는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가 정기적인 치료 외에도 스스로 역량을 키워 일상생활에서 아이들의 의사소통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에게 자폐아의 특징은 무엇인지, 자폐아를 보살피는 부모들이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교육부 국립특수교육원에서 발간하는 ‘특수교육 연차보고서’를 보면, 국내 자폐성 장애아는 늘고 있다.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대상자 가운데 자폐성 장애아는 2017년 기준 1만1422명이다. 이는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 8만9353명의 12.8%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2013년 8772명(전체 특수교육 대상자의 약 10%)보다 2600명가량 늘었다. 사회의 편견 때문에 공식적으로 등록하지 않은 아이들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페아와 그를 키우는 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 ‘말아톤’.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주인공이 마라톤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거는 과정을 담았다. 한겨레 자료.
자페아와 그를 키우는 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 ‘말아톤’.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주인공이 마라톤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거는 과정을 담았다. 한겨레 자료.

최근 개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비롯해 영화 <말아톤>, <레인맨> 등을 통해 대중들은 자폐아와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이 영화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폐아 가운데 특별한 부분에 우수한 기능을 지닌 서번트증후군에 관한 이야기일 뿐인데, 실제 자폐아가 갖고 있는 특징은 다양하다.

자폐아라고 하면 주로 눈맞춤을 하지 않거나 반복적 행동을 하는 등의 경우만 떠올린다. 그러나 같은 자폐아라도 아이마다 양상은 다를 수 있다. 크게 보면 한 부류는 감각에 대해 과민해서 그것을 회피하려 한다. 또 다른 부류는 감각에 둔감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쫓아다닌다. 박 소장은 “움직임, 시각, 촉각, 소리, 냄새 측면에서 아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파악해야 부모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아이를 도울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뭐든 부모가 대신해주면 제자리
혼자 장난감 갖고 놀게 하지 말고
사람과 함께 노는 즐거움 깨닫게

벽돌 쌓듯 단계마다 하나하나 확실히
끝이 어딘지 모를 긴 터널
서두르지 말고 지치지 않도록

예를 들어 소리에 과민한 아이는 누가 청소기만 돌려도 귀를 틀어막고 운다. 이런 아이는 부모가 조용하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움직임에 과민한 아이는 움직임을 피한다. 시각에 과민한 아이는 눈을 자주 깜빡이고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촉각에 과민하면 머리를 감거나 자르는 것을 싫어하고 손에 찰흙이나 진흙, 물감이 닿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나 같은 자폐아라도 감각에 둔감한 아이는 이와는 반대다. 소리에 둔감해 음악이나 특정 소리를 좋아하고 어떤 소리를 내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엄마 아빠가 연기하듯이 말을 걸면 좋아한다. 시각에 둔감한 아이는 시각 자극을 추구해서 불을 자꾸 껐다 켰다 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움직임을 지켜본다. 움직임에 둔감한 아이는 뛰고 흔들고 빙빙 도는 것을 좋아한다. 촉각에 둔감한 아이는 담요를 돌돌 말고 있거나, 소파 뒤 같은 좁은 공간에 끼어 있으려고 한다.

지난달 초 임상심리전문가 박혜원씨가 서울 올림픽파크텔 아테네홀에서 ‘네 마음을 보여줘’라는 주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의 언어 및 사회성 증진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씨는 캐나다 비영리기관 하넨센터의 언어 발달 프로그램을 집대성한 <우리 아이 언어치료 부모 가이드>의 번역에 참가했다.
지난달 초 임상심리전문가 박혜원씨가 서울 올림픽파크텔 아테네홀에서 ‘네 마음을 보여줘’라는 주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의 언어 및 사회성 증진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씨는 캐나다 비영리기관 하넨센터의 언어 발달 프로그램을 집대성한 <우리 아이 언어치료 부모 가이드>의 번역에 참가했다.

뇌에 자국 남긴다는 생각으로 반복

아이가 감각에 과민한지 둔감한지 파악했다면, 내 아이의 의사소통 단계가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자폐아의 의사소통 단계는 4단계로 구분된다. 나만의 방식 단계, 의사표시 단계, 초기 소통 단계, 서툰 친구 단계가 그것이다.

‘나만의 방식 단계’에서는 옆에 있는 존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무엇이든 혼자서 하려고 한다. 박 소장은 “이 단계의 아이들은 말의 힘을 모르고, 타인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을 못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밖에 나가고 싶어도 문 앞에서 혼자서 낑낑대며 문을 열려고만 하고 남에게 요청하지 않는다. 또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소리를 내고, 불만이 있을 때 울거나 소리를 지른다. 박 소장은 “이 단계 아이의 세상에는 타인이 없고 나 혼자다. 아이가 울거나 소리칠 때 부모한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모르고 무턱대고 아이를 혼내봤자 아이는 왜 혼나는지도 모르고 부모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이의 의사소통 증진을 위해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도울 수 있을까? 박 소장은 “의사소통은 단지 말을 주고받는 것 외에도 얼굴 표정, 몸짓, 행동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며 “아이에게 의사소통할 이유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부모가 대신해준다면 아이에게는 의사소통할 이유가 생기지 않아 발전이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타는 그네를 밀어주다가 딱 멈춘다. 그리고 얼른 말한다. “한번 더 밀어줄까?” 자폐아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부모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그래~” 하고 다시 밀어준다. 이때 “‘응’이라고 대답해야 밀어줄 거야”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효과가 없다. 박 소장은 “아이의 뇌에 자국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반복적으로 이런 자극을 해야 한다”며 “함께하는 것, 존재가 옆에 있는 것을 감지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상호작용을 하라”고 말했다.

각각의 단계에 적절하게 개입

‘의사표시 단계’의 아이들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주로 부모의 손을 잡고 그쪽으로 데리고 간다. 집중하거나 안정을 취하기 위해 몇 단어를 반향어처럼 반복한다. ‘초기 소통 단계’의 아이들은 익숙한 상황이라면 부모나 잘 아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림이나 몸짓, 단어를 사용해 음식, 장난감, 놀이 등 목적을 가지고 요청도 한다. 선택적 질문에도 답을 할 줄 안다. ‘서툰 친구 단계’에서는 부모와 좀 더 길게 상호작용할 수 있고, 익숙한 놀이 상황에서는 대부분 다른 아이들과도 잘 논다. 단어나 다른 의사소통 방법을 사용해서 요구하기, 불만 표시, 인사하기, 질문이나 답하기 등도 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단계를 높여가기 위해서는 아이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게 하지 말고 사람하고 노는 즐거움을 먼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장난감을 갖고 논 아이는 타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행동과 언어 측면에서 발달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런 원칙은 자폐아 외에도 모든 아이에게 적용된다.

“의사소통은 점진적인 발전 과정이에요.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 해요. 아이가 조금 잘하면 그다음 단계로 빨리 가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벽돌을 쌓아 집을 짓듯 단계마다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박 소장은 자폐아를 돌보는 일은 끝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부모들이 지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각 의사소통 단계에 적절하게 개입할 것을 권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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