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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불안이 불안 키우는 ‘코로나 과잉대응’

등록 2020-02-11 05:00수정 2020-02-11 09:29

학부모 설문으로 학교 휴업 결정
방역소독하고서도 장기 휴점 조치
확진자 동선도 무분별한 공개 남발

의료계 “낙인찍기식 대응 멈춰야”
배제·차별 대신 포용과 인권보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23번째 확진자가 서울 마포구의 대형마트를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근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 휴업안내문이 붙어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23번째 확진자가 서울 마포구의 대형마트를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근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 휴업안내문이 붙어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교대부설초등학교는 지난 6일부터 임시휴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서초구는 서울시교육청이 두차례에 걸쳐 휴업 명령을 내린 중랑·성북·송파·강남·양천·영등포구 등 6개 지역에 해당되지 않는다. “학부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휴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이를 근거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휴업을 결정했다”는 것이 학교 쪽 설명이다. 이 학교는 12일까지 휴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지역사회 확산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면서, 과잉대응이나 과도한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낙인찍기식으로 감염병에 대응하게 되면 오히려 신속한 조기 진단과 환자 관리에도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는 10일 공동 성명을 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극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 과도한 불안과 선동, 비전문가들이 쏟아내는 백가쟁명식 해법, 환자·접촉자에 대한 낙인 등”이라고 밝혔다. 이어 두 학회는 “확진자가 다녀간 지역 인근의 학교·상점이 문을 닫는 것은 공중보건 측면에서 효과가 없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소모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동현 한림대 의대 교수(사회의학)는 “휴업 등의 결정이 과학적인 이유 때문이라기보다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잠재우기 위한 ‘심리 방역’ 차원인 것인데, 그것이 오히려 지역사회에 더 큰 불안을 2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보다 바이러스 공포로 인한 2차 피해가 더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날 정부가 확진환자가 다녀간 곳이더라도 소독 뒤 이틀째부터 영업이 가능하다는 등의 지침을 정확하게 제공하겠다고 한 것도, 국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날 기준 확진환자는 27명으로 전날과 같았고, 이 가운데 증상이 호전돼 퇴원한 이도 4명으로 늘었다.

①학부모 설문으로 휴업 결정 이날 오전 기준 전국적으로 개학 연기 또는 휴업 중인 유치원·학교는 모두 365곳이다. 지난 7일 기준으로는 647곳에 이르렀다. 서울 은평구 예일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의 직장에 확진자가 들렀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증상이 없고 격리 대상이 아닌데도 학교장 재량으로 지난 3일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교육당국은 애초 ‘지역사회 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정상적으로 학교 운영을 한다’는 입장이었다가, 지난 2일 기존 입장을 뒤집고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과 확진 전 증상자가 이동해 감염이 우려되는 지역에 한해 학교 휴업을 허용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정부와 교육당국이 제시한 기준을 고려하는 대신 학부모 요구에 따라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을 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당국이 허용한 곳들도 휴업 기간이 최대 2주에 이르는 등 기간이 과도하게 길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한국-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은 휴업에 들어간 학교가 2천여곳에 이르자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학교는 메르스 전염에 관련되고 있지 않다”며 한국 정부에 수업 재개 고려를 권고했다. 소아감염 전문가들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이들에게는 증상이 가볍게 지나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예방의학)는 “휴업이 (감염 전파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경우는 독감처럼 공기감염으로 전파돼 접촉자를 찾아 격리할 수 없거나 주로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질병인 경우”라고 말했다.

②소독 뒤에도 장기 휴점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대기 중에 배출되면 감염력이 급격히 낮아지고 소독을 실시하면 하루 만에 사멸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보건당국은 확진환자가 방문한 장소를 소독한 뒤, 그 효과를 보기 위해 다음날까지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방역소독 지침을 뛰어넘는 영업 중단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번째 확진자의 직장인 지에스(GS)홈쇼핑은 지난 6일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3일 동안 직장을 폐쇄했고, 23번째 확진자가 2일 퇴실한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은 오는 16일까지 영업을 중단했다. 앞서 12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알려진 신라면세점 서울점은 2일 휴업한 뒤 7일 영업을 재개했지만 운영 시간을 2시간30분 줄였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전 점포, 현대백화점 13개 점포는 10일 방역을 이유로 일제히 문을 닫았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을 제외하면 확진자가 다녀간 곳은 없는데도 고객들의 불안감 때문에 휴점한 것이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교수(호흡기내과)는 “일반적인 코로나바이러스는 섭씨 24도, 습도 50% 정도에 7일 정도 생존 가능하다”면서도 “지금과 같은 휴점 또는 폐쇄 조치들은 과하다. 바이러스는 소독약에 5분만 담가도 다 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독을 충분히 하고 환기를 한다면 이후 정리시간까지 고려해도 휴업은 최대 2~3일이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는 “확진자와 같은 시간에 백화점에 있었다고 해도 같은 매장, 가까운 거리에서 상담을 한 직원이 아니라 다른 매장에 있었다면 큰 문제가 없다”며 “백화점 전체를 폐쇄할 필요까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③무분별한 확진자 동선 공개 확진환자에 대한 과도한 동선 공개는 낙인찍기로 이어질 수 있어, 외려 신속한 진단과 환자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파력이 있는지를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확진환자가 다녀간 곳을 일단 폐쇄하는 분위기에서는 당사자들이 방역당국을 피해 다니게 된다는 얘기다.

안승남 경기 구리시장은 구리시에 거주하는 17번째 환자의 동선을 중대본이 발표하기도 전에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렸다.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17번째 환자가 공항철도로 서울역에 도착해 인근에서 식사를 한 것부터 상세한 동선이 보건당국 공식 발표보다 먼저 이루어진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중대본 공개 전에 12번째 환자가 다녀간 영화관의 좌석번호 등 구체적인 동선 정보를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지방자치단체의 이런 움직임은 시민들의 불안을 조기에 해소한다는 차원인데, 당사자의 기억에 의존한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거나 증상 발현 시점과 무관하게 동선을 공개하는 것이어서 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보기 어렵다. 보건당국은 확진자의 동선을 ‘증상 발현 하루 전부터’로 정하고 있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바이러스 양이 전염을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에 증상 발현 하루 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나 신용카드 사용 기록 등 정부 차원에서만 수집할 수 있는 정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선을 파악한다. 지자체처럼 신속성만 강조하다보면 시민들한테 불안을 야기할뿐 아니라 불필요한 피해자도 양산한다는 취지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교수(감염내과)는 “정보가 파악될 때마다 바로바로 공개하다가 잘못된 정보가 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다. 미국은 역학조사관이 이동할 때 공보 분야 인력도 함께 이동하는데, 역학조사에 전문지식이 있는 이들이 정부와 지자체 간 혼선을 교통정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방문으로 인한 임시휴점에 들어간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방문으로 인한 임시휴점에 들어간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④공포 조장하는 가짜뉴스 언론의 지나친 불안 조장, 가짜 뉴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전국 1천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42.1%가 “가짜임을 확인한 가짜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 참여자의 94.7%는 가짜 뉴스 유포자들을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마늘 섭취, 진통·소염 연고 바르기, 중국산 수입식품 배척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인양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달 30일 <미디어오늘>에 신문·방송 모니터보고서를 내어 일부 매체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보도하며 공포심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민언련은 지난달 21일 <에스비에스>(SBS)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이 중국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치료하러 한국으로 오고 간다는 ‘소문’이 돈다고 전한 사례를 짚으며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로 ‘중국 포비아’를 불러일으킨 보도”라고 했다. 손장욱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언론이 불필요한 공포를 조성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며 “지나치게 선정적인 단어를 써서 표현하는 것도 자제를 해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용어 사용에서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기숙사 1개 동에서 따로 묵을 수 있게 했는데 이런 조치는 ‘격리’보다 ‘분리’라고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짚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 예방적 조치인 탓이다. 대한예방의학회와 대한역학회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감염병 방역활동의 성패는 배제와 차별이 아니라 포용과 인권 보호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동안 감염병 유행에서 얻은 보건학적 교훈”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다해 노지원 이유진 선담은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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