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는 대구시민들을 응원하는 내용을 담아 제작한 펼침막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건물 외벽에 걸려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코로나19가 전국으로 번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도 커지고 있다. 내가 갔던 백화점에 확진자가 다녀갔다 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접촉자가 확인돼 자가격리를 한다 하니, 내가 걸리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정부가 확산세 차단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며 내놓는 대책도 이런 마음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런 때일수록 시민들의 ‘심리 방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건강커뮤니케이션과 위기 소통 등을 연구하는 유명순 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감염병의 위험은 어차피 중앙과 언론에서 알린다. 하지만 돌봄은 지역에서 자원을 찾아, 지역 맞춤형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7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과 같은 건강재난 상황에선 모든 의사결정이나 위기 소통에 그 지역 고유의 조건을 단 하나라도 더 반영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기 소통은 사람들에게 닥친 위험과 이 위험을 관리할 방법을 설명하는 과정을 일컫는데, “심리 방역은 불안 관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통합적인 위기 소통이기 때문”이다.
같은 코로나19라도, 영남 지역 시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수도권보다 대구에서 환자가 나왔을 때 더 크다.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에 노인이 많으냐, 직장인이 많으냐에 따라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경로당에 가도 되나’와 ‘의심 증상이 있는데 진단서 없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나’로 다를 수 있다. 유 교수가 “‘지역의 불안’을 달래야 한다”고 지적하는 건 이 때문이다.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 홍보단’은 △격려 백신―나를 격려하기 △긍정 백신―좋은 일 하기 △지식 백신―제대로 알기 △희망 백신―끝이 온다는 것을 알기 등이 담긴 ‘심리 방역을 위한 마음의 백신 7가지’를 발표했다. 일부 시·군·구청은 관할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그 사실과 동선 등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주민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초보적인 단계이긴 하지만 좀더 지역에 적합한 방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정보를 공개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유 교수는 “확진자가 다녀간 곳을 무조건 기피하라고 동선을 공개하는 게 아니다.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위험에 대비하라는 메시지가 함께 담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교수는 “지역의 특성과 취약층이 누구인지 아는 지역의 ‘인플루언서’를 찾아내, 민관이 협력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어르신센터 자원봉사자 같은 사람의 노하우와 의견이 지역의 대책에 수렴돼야 한다. 지역에 있는 의사나 보건 전문가 등과 지방정부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예방수칙을 함께 만들고, 해당 지역 주민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거기에 물어볼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전문가와 항상 연결돼 있다’고 느끼면, 멀리 있는 정부 대책보다 더 힘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지역 보건소는 이 네트워크의 주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 인구 구조, 사망률, 스트레스 등 주요 건강지표와 소득·교육 수준별 지역 격차 자료 등을 참조해 4년마다 지역보건의료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건강 문제 가운데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어떤 집단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서다. 지역의 의사협회나 의료복지협동조합, 주민자치위원회 등의 자치조직, 지역 시민단체 등의 협업도 고려해볼 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면, 지역의 맥락에 맞게 특화된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돼 불안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맞춤형 심리 방역은 정부가 제시하는 대책의 성패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 교수는 “지역마다 상이한 조건이 반영되지 않으면 정부 대책은 시민들에게 수용되지 않는다. 닥친 상황을 ‘내 일’로 받아들이는 것, 대책 실행에 참여하려는 동참의식 같은 심리적 수용성과, 지역의 의료시설이나 학교와 같은 물적·사회적 수용성이 정부 대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국민의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고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합동정보센터(Joint Information Center) 모델을 한국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합동정보센터는 미국의 공중보건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가동되는 임시조직으로, 위기 소통에 특화돼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합동정보센터는 관련 위험에 노출된 노인들의 취약성을 평가해 그에 맞는 대안을 제시했고,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위기 대응과 관련한 대국민 인식조사를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현장에 보건교육 전문가를 파견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유 교수는 “감염병에 선진화된 대응을 하려면 질병관리본부같은 데서 조사를 하고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국민이 불안해한다’는 말은 필요없다.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게 두려운 건지, 회사에 못 나가는 게 두려운 건지, 치료제가 없어 두려운 건지 등 국민이 불안을 느끼는 원인을 정확히 조사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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