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한 의료진이 오전 근무를 마친 뒤 방호복을 벗고 있다. 연합뉴스
“불가마 사우나 아시죠? 거기에 마스크 끼고 들어가 있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종의 한 보건지소 소속 공중보건의 ㄱ씨는 낮 기온 35도가 넘는 무더위와 사투 중이다. 오후 1시30분~6시 환기가 되지 않는 레벨디(D) 방호복을 입고 서 있다 보면 15분만 지나도 숨이 턱 막힌다. 40분이 지나면 옷이 흠뻑 젖는 것은 물론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ㄱ씨는 23일 “2시간 이상 검체 채취를 하고 방호복을 벗으면 어지럽다”며 “방호복을 중간에 벗을 수 없어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고, 화장실을 자주 갈까봐 커피는 끊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ㄱ씨처럼 폭염 속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진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선별진료소에 냉각조끼(아이스쿨러) 422개를 지급한 데 이어, 추가로 1천개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것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냉각조끼가 개인별로 지급되는 게 아니라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공용으로 써야 하는 것이어서, 감염 우려 등의 문제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ㄱ씨는 “다른 사람이 착용한 것을 입었다가 혹시 문제가 될까봐 냉각조끼에는 아예 손도 안 댔다”고 털어놨다. 경기도 공중보건의 ㄴ씨도 “냉각조끼가 인원 수대로 지급된 적이 없다”며 “사용해봤지만 크게 효과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선별진료소의 의료진은 정부가 레벨디 방호복 대신 배포하는 ‘수술용 가운세트’가 검체를 채취할 땐 부적절하다고도 했다. 이 가운세트는 수술용 가운과 페이스실드(안면보호구), 엔(N)95 마스크, 장갑 등으로 구성된다. ㄱ씨는 “일부 감염병 전문가들이 (폭염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수술용 가운세트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현장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방호복을 당기고, 불만이 있으면 침을 뱉는 등의 돌발상황이 100명 중에 4명은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용 가운은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ㄴ씨는 “가정에 아이가 있는 간호사 중에서는 가족이 감염될까 걱정돼 레벨디 방호복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인력과 근무시간이 우선적으로 조정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ㄱ씨는 “햇볕이 뜨거운 낮 12~2시 대신 오후 6시 이후 근무하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무더위로부터 의료진 건강도 지키고 퇴근 뒤 직장인들도 검사를 받을 수 있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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