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카트 관리 노동자가 기계를 이용해 카트를 한데 모아 운반하는 모습. 민주노총 인천공항지역지부 카트지회 제공
인천공항에서 수하물 카트를 관리하는 노동자 20명이 광고대행업체에 간접고용된 신분 때문에 최근 인천공항공사와 새로 계약을 맺은 광고대행업체에서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항 때부터 편법 계약으로 이들을 방치해온 인천공항공사는 광고대행업체 쪽의 이런 조처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21일 인천공항공사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카트분회의 설명을 종합하면, 인천공항공사에서 카트 관리와 유지 보수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 150여명 가운데 20명은 지난 16일 인천공항공사와 새로 계약을 맺은 광고대행업체로부터 ‘고용승계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카트 노동자들은 인천공항이 여행객 편의를 위해 도입한 수하물 카트를 한데 모으고 유지·보수하는 일을 맡지만, 인천공항공사에 직접고용되어 있지 않고 인천공항공사와 계약을 맺은 광고대행업체 소속이다. 인천공항공사는 2001년 개항 때부터 광고대행업체에 카트 운영과 관리를 통째로 떠넘겼는데, 광고대행업체는 인천공항 카트에 고객사 광고를 부착하는 식으로 수익을 내면서 카트 노동자들을 채용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도맡았다. 인천공항은 이 광고대행업체에 주기적으로 광고를 발주하는 식으로 수입을 보전해줬다. 겉모습은 서비스 계약을 맺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고용 계약을 맺는, 전형적인 간접고용 구조다. 지난해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광고대행업체가 인천공항공사에 지급하는 카트 임대료는 연 6800만원 수준이지만 인천공항공사가 광고대행업체에 지급하는 광고료는 45억원에 달했다. 인천공항공사가 수익성을 위해 맺은 계약이라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직접고용을 회피한 인천공항의 편법 고용에 의해 카트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의에서 배제된 데 이어 해고 위협에까지 내몰리게 됐다. 2019년 인천공항공사는 파견·용역·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문재인 정부의 방침에 따라 청소 노동자 등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도 카트 노동자들은 계약 명칭이 ‘상업시설(카트) 임대차 계약’이라는 이유로 정규직화 대상에서 배제했다. 같은해 김포공항과 김해공항 등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카트 관리 업무가 상시·지속적이라는 점에 주목해 카트 노동자들을 용역 계약으로 보고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화한 것과 대비되는 조처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카트분회는 이날 오전 민주노총 1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로 인한 인천공항공사의 적자를 월급 230만원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는 작태”라며 “김경욱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고용보장 약속을 지키고 공공기관 모범 사용자로서 상생의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진희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직국장은 “직원들이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기존 급여의 80% 수준에서 유급휴직을 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했으나 업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감원만 고집했다”고 말했다. 오태근 카트분회장은 “수십 개의 카트를 빠르게 모으려면 관련 기계 사용법 등을 익히는 등 숙련도가 필요한데 이를 20년 가까이 수행한 노동자도 업체가 교체됐다는 이유로 수습기간을 적용받고 월급을 삭감당하는 게 간접고용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카트 노동자들은 인천공항공사가 필수서비스 가운데 하나인 카트 관리를 더 이상 광고대행업체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구조 하에선 광고 수입을 이유로 카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바뀐 업체도 코로나19로 카트 광고를 하려는 고객이 적다며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신 국장은 “카트 관리는 공항공사의 품질 향상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고 카트 광고는 광고주를 위해 운영되는 것인데 이 둘을 연계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며 “민간업체 입장에선 카트 유지·관리를 적극적으로 할 유인도 없어 노동자 처우와 서비스 품질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용역근로자보호지침과 민간위탁보호가이드라인을 보면, 공공부문이 용역업체나 민간위탁업체를 교체하는 경우 노동자 고용을 승계하도록 정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이번에도 해당 계약의 명칭이 ‘시설임대계약’이기 때문에 이 지침과 가이드라인의 적용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인천공항공사는 <한겨레>에 “카트 노동자에게 추가 채용 공고를 내거나 탈락자 재응시가 가능하도록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경영학)는 “인천공항공사는 마치 단순한 시설임대 계약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카트 관리 업무를 민간에 맡겨 노무를 제공받는 것이므로 (고용을 승계하라는) 민간위탁보호가이드라인을 적용받는 게 맞다”며 “공사가 조금만 사전에 신경 썼어도 막을 수 있었던 문제를 이렇게까지 방치했다는 건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사가 업체에게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이면서 직영화나 자회사 전환도 아니고 일하던 곳에서 계속 일하겠다는 노동자의 요구마저 모르쇠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태도”라며 “시설임대 계약을 민간위탁계약으로 바꾸고 업체와 협의해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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