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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건설현장 체감온도 38도인데…“10명 중 7명 휴게실 없거나 멀다”

등록 2021-07-21 13:16수정 2021-07-21 14:22

정부, 20일 ‘열사병 예방 가이드라인’ 줬지만
다수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현장 바닥서 휴식
전국 건설현장 곳곳에서 햇볕을 피해 잠시 휴식하는 건설 노동자들. 휴게실이 없어 현장 바닥에 나무 편자를 놓거나 맨바닥에 누워서 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건설노조 제공
전국 건설현장 곳곳에서 햇볕을 피해 잠시 휴식하는 건설 노동자들. 휴게실이 없어 현장 바닥에 나무 편자를 놓거나 맨바닥에 누워서 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건설노조 제공
#1.

지난 19일 경기도 수원의 낮 최고 기온은 32.3도였지만 지역 건설현장의 온도계는 38도를 가리켰다. 콘크리트에서 열이 올라오고 철도 달궈지는 까닭이다. 안전모에 마스크를 쓰고 피부 보호용 긴 소매와 긴 바지까지 입은 건설 노동자들은 잠깐만 서 있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흐른다고 했다. 폭염 속에서 일한 지 10여분 만에 마스크도 땀에 젖어 소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2.

“저는 20여년 동안 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찌는듯한 무더위에 바람 한점 없는 지하층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못 주머니를 차고 거푸집 작업을 하다보면 체감 온도는 40도를 훌쩍 넘어갑니다. 햇볕에 달궈진 철근은 토시를 하고 긴팔 옷을 입어도 데이기 일쑤이고, 뜨거운 철근을 어깨에 메면 이곳저곳 화상 자국만 남습니다. 안전장비와 마스크까지 착용해 숨쉬기조차 힘든 건설현장에서는 안전보다 비용을 중시하는 그간의 관행 때문에 변변한 그늘막 하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대전충청세종건설지부 조합원 한경진(46)씨

체감 온도가 33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건설 노동자들이 폭염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건설현장의 보호 조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조사 결과와 현장의 호소가 나왔다.

2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가 건설 노동자 145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건설현장에 ‘냉방기가 설치된 휴게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거나 ‘너무 멀어서 가기 힘들다’는 답이 75.8%(1101명)에 달했다. ‘쉴 때는 햇볕이 차단된 곳에서 쉬느냐’는 질문에는 66.5%(966명)가 ‘아무 데서나 쉰다’고 답했다. 작업하는 공간 가까이(100미터 이내)에 간이 그늘막이 없다는 응답자도 45.4%(660명)였고, 모두가 쉴 수 있는 충분한 휴게공간이 있는지에 대해선 9.4%(137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건설현장에 열을 식힐 세면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폭염기 세면장 상태가 어떻냐’는 질문에 ‘씻을 데가 못 된다’는 응답이 45.1%(656명)였다. ‘없다’(26.3%)는 응답도 상당했다.

폭염 특보가 발령될 경우, 1시간 일하면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쉬도록 하는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건설 노동자들 가운데 ‘규칙대로 쉬고 있다’고 답한 이는 22.8%(332명)에 그쳤다. 57.0%(828명)는 ‘재량껏 쉰다’고 답했고, ‘(폭염에 따른) 쉬는 시간이 없다’고 답한 이들도 20.2%(292명)이나 됐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별도의 휴게공간 없이 작업 공간 바닥에 누워 쉬는 모습. 햇볕이 완벽히 차단돼야 한다는 노동부 지침과 달리 햇볕이 들어오는 바깥 공간과 연결돼 있다. 건설노조 제공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별도의 휴게공간 없이 작업 공간 바닥에 누워 쉬는 모습. 햇볕이 완벽히 차단돼야 한다는 노동부 지침과 달리 햇볕이 들어오는 바깥 공간과 연결돼 있다. 건설노조 제공
앞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열사병 예방 이행 가이드’를 건설현장에 배포했다. △규칙적인 물 마실 시간 제공 △햇볕을 완전히 가리는 충분한 공간의 그늘 제공 △폭염특보 발령 때 1시간당 10∼15분 휴식시간 배치 △건강상 이유에 따른 노동자의 작업 중지 요청에 응할 것 등이 담겨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정부가 해석해 매년 배포하는 자료다. 하지만 대다수 건설현장에서 이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셈이다. 강한수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이날 세종시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폭염이 이어졌던) 2018년에 온열질환으로 7명의 건설 노동자가 사망했다”며 “고용노동부의 지침은 법이 아니라 건설사들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작업시간 단축·조정 권고도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노동부 지침을 보면, 폭염주의보(체감 온도가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가 발령된 날은 작업시간을 단축하거나 조정해야 하고, 폭염경보(체감 온도가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가 발령된 날은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5시 작업을 중지하게 돼 있다. 그러나 건설 노동자들 가운데 76.2%(1107명)는 이런 날에도 “별도 중단 지시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달 폭염 위기 경보를 ‘주의’로 유지하다 지난 20일 ‘경계’로 한 단계 격상했다.

노동자들은 폭염 예방을 위해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46.9%·681명)과 ‘휴식시간, 식수 등 법 제대로 이행’(22.8%·331명), ‘출근 시간을 1~2시간 당기고 무더위 시간을 피해 일찍 퇴근’(30.4%·441명)하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건설현장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있고 시정 조치도 요구했으나 다 손이 미치지는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관련 사항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폭염 등에 의해 공사 기한을 늘릴 수 있다는 조항은 대부분의 표준하도급계약서에 반영돼 있어 사업주들이 공사 기한을 늘려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현장에서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세종/최예린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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