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만 3명의 협력업체 노동자가 끼임과 추락 등으로 사망한 현대건설에 대해 정부가 특별감독을 한 결과, 위험 요인을 알린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작업 과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협력업체 직원은 의견 청취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4일부터 현대건설 본사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진단과 전국 현장의 법 위반 여부를 특별감독한 결과, 현대건설이 안전보건관리제도를 형식적으로 운영한 사실을 여러 건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현대건설은 2011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51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업장이다. 특히 올해는 반년 만에 건설 현장 노동자 3명이 끼임과 추락 등으로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협력업체 직원이다.
노동부가 본사와 68개 건설 현장을 감독해 찾아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은 본사 차원에서 과태료 198건(3억 9140만원)과 시정 조처 2건, 건설 현장 차원에서 사법 조처 25건과 과태료 76건(1억 7621만원), 시정 조처 75건 등이었다.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구조적으로 미흡한 사례가 많았다.
우선 현대건설은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듣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안전 보건 제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나온 제안을 현장에 반영하는 비율은 낮았다. 최근 3년 동안 152건의 제안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반영되지 않은 건이 66건(43%), 검토 중이거나 안전 보건과 관련이 없는 의견이라고 결론내린 건이 18건(12%)이었다. 게다가 협력업체 노동자는 아예 의견 청취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대건설 각 건설현장 소장들이 수시로 실시하는 현장 위험성 평가도 위험한 공정을 배제하거나 개선하는 조처가 뒤따르지 않아 평가 때마다 동일한 위험 요인이 반복해 발견됐다. 현대건설 본사도 평가에서 지적된 사항들을 각 건설현장이 시정하는지 따로 모니터링하지 않았다.
현장 관리와 안전 기획 업무를 맡은 안전보건관리자는 500여명이나 됐지만, 안전관리자의 정규직 비율이 39%에 그쳤고 보건관리자는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별도의 직무수행능력 평가 없이 안전보건관리 직군으로 배치되거나 업무를 맡던 도중 타 직군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노동부는 “안건보건관리자의 책임감 있는 업무수행 여건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 현대건설 대표이사와 각 사업본부는 안전 관련 방침과 목표를 세워 운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추진 전략을 세우지 않거나 안전 관련 성과를 측정할 지표는 마련하지 않았다. 예산도 안전보건 관련 편성액과 집행액이 매년 늘었지만 대부분이 안전보건관리자 급여로 지출돼 협력업체를 지원하거나 직원 안전교육을 하는 데는 쓰이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도 전체 평가 점수 100점 가운데 5점만을 안전 관리 수준에 배점해 사실상 안전 관리 수준이 낮은 최저가 업체를 선정하고 있었다.
노동부가 제시한 현대건설 감독 기준은 앞서 ‘적정한 예산과 인력’을 갖춰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정의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세부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기업이 관련 절차를 갖췄는지를 보는 것에 더해 제도의 실효성까지 함께 살필 가능성이 크다. 권기섭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서류 중심의 안전보건관리체계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어렵다”며 “위험요인 분석·개선 절차에 현장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고 안전보건 전담 인력의 활동 시간을 보장해야 하며, 협력업체의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는 조처에 중점을 두어야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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