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창구에서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실업급여 신청 상담을 받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5년차 타워크레인 기사 김아무개(42)씨는 최근 5년간 실업급여를 세 차례 받았다. 건설사들이 그를 공사 기간에만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하다 보니 일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을 채울 때가 별로 없다. 올해도 지난 1월부터 석달간 매달 180만원씩 실업급여를 받아 4인 가족 생활비로 썼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타워크레인 기사도 월급을 받는 건설사 정규직이었지만, 지금은 일감에 따라 벌이가 불규칙한 비정규직으로 굳어져 버렸다.
정부가 최근 5년 내 실업급여를 세 차례 이상 수급한 사람에 대해 수급액을 최대 50%까지 단계적으로 삭감하는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이중고를 안긴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고용보험 적자 폭이 커지자 부정수급을 차단하겠다는 취지인데, 김씨 같은 이들은 억울한 희생자가 될 처지다. 김씨는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데 정부는 계획적으로 실업급여를 노린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코로나19 여파로 고용보험 재정이 바닥날 위기에 처한 상황을 고려해 1일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고용보험위원회에서
고용보험료율 인상에 합의한 만큼, 실업급여를 삭감하는 법 개정안은 철회하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고용보험위원회는 지난달 9일 실업급여를 5년 내 3회 이상 수급한 사람에 대해 세번째부터 수급액을 10% 깎고 6회 이상이 되면 50%를 삭감하는 ‘고용보험 제도개선안’을 의결했는데, 노동계 위원들은 반대했지만 표 대결에서 밀렸다. 지난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만든 단기일자리에 반복적으로 취업한 뒤 실업급여를 타는 사례가 일부 적발됐다는 이유로, 경영계 위원과 공익 위원들이 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지난달 발의하며 ‘메뚜기 실직자’를 막겠다고 나섰다. 또 고용노동부도 유사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달 23일 입법예고에 들어갔으며, 이날로 의견 수렴을 끝냈다.
문제는 이 법안이 계약직·파견·용역 등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0년 회계연도 결산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까지 5년간 실업급여를 세 차례 이상 받아 간 인원 9만3천명(전체의 5.5%)을 직종별로 분석할 경우 공공행정과 국방·사회보장 행정 분야(22.6%)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건설업(15.1%)과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서비스업(11.8%), 제조업(7.5%) 등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노동부도 정부 단기일자리 참여자뿐 아니라 기간제 노동자와 임기제 공무원 등도 반복 수급자에서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와 있다.
지난해 노동부의 관련 연구용역을 맡은 한국노동연구원은 ‘구직급여 반복 수급 원인 분석 및 제도개선 방안 검토’ 보고서에서 반복수급에 도덕적 해이가 없는데도 부당한 제재를 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연구진은 직전 3년간 실업급여를 세 차례 받은 2017년 수급자를 대상으로 2018~2019년에 추가 수급을 했는지 이력을 검토한 결과, 전체의 40%가 그렇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3회부터 제재하면 고의적으로 매년 수급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할 수 있고 특히 젊은층일수록 그렇다”고 짚었다. 연구진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구직활동 점검을 일상화하거나 반복 수급자의 실직과 취업이 같은 기업에서 여러 차례 이뤄지는지 등을 살필 것을 제안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지난 31일 노동부에 제출했다. 건설노조는 “어떤 노동자든 일하고 싶어도 못할 때 가장 힘들다”며 “노동 유연화로 불안정 노동에 내몰린 이들에게 최소한의 사회보장이 되는 구직급여를 제한해 비정규직과 청년 노동자를 옥죄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건설노조가 올해 타워크레인 기사 18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9.5%는 공사 종료 뒤 9개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등도 지난 31일 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이들 단체는 “(반복수급 제한은) 5년 동안 세 번 직장을 잘리고, 다시 일할 곳을 찾아야 하는 노동자의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국외에서도 선례가 없다”며 “코로나19 시대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유지한 고용보험기금의 역할은 더욱 확대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엉뚱한 실업급여 반복수급 제한이 아니라 고용보험료 인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입법예고 기간 제출된 의견서를 토대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화진 노동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실업급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을 막아보자는 게 제도개선 취지지만 혹시라도 특정 분야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입법 과정에서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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