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 인근 도로에 42살 택배대리점주 이아무개씨를 추모하는 택배차량이 줄지어 정차돼 있다. 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지난달 30일 경기도 김포의 씨제이(CJ)대한통운 대리점주가 조합원들의 택배 일부를 대신 배송하는 등 갈등을 빚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일부 조합원이 사망한 대리점주를 괴롭힌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조합원들의 배송 거부는 “배송 의무가 없는 택배여서 배송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2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리점주 이아무개(42)씨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내부 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우선 일부 조합원이 대리점주 이씨를 괴롭힌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조합원 일부가 고인(대리점주)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글들을 단체 카톡방에 게재한 사실을 확인했고 고인에 대한 항의의 글과 비아냥, 조롱 등의 내용이 확인됐다”며 “이에 대해 유족에게 깊이 사과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경찰 조사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결론과 무관하게 노조는 규약에 의거 해당 조합원을 노조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노조는 대리점주 이씨와 택배기사들이 수수료 공제와 잦은 임금 지급 지연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씨제이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는
대리점주 이씨가 노조 조합원들의 불법파업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전날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유서를 확인한 결과, 이씨가 평소 조합원들이 배송을 거부한 택배 물량을 직접 배송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자신을 괴롭힌 12명 조합원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는 아울러 조합원들이 파업한 것은 아니지만 일정 규격에 미달하는 택배의 배송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포장이 불량한 택배나 묶음 배송이 불가능한데도 함께 묶여있어서 기사가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는 택배, 무게가 20㎏ 이상인데도 사전에 약속한 것보다 운임이 낮게 책정된 택배 등의 배송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택배 표준약관에 의거해 배송 의무가 없는 물품을 지사에 반납하고 개선된 물품을 배송하는 식으로 지난 5월부터 진행했다”며 “기사 1인당 하루 10∼15개 정도이고 하루에 총 150∼180개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김포 대리점의 하루 배송 물량 약 5천건 가운데 약 3%가 규격 위반 등으로 배송되지 않는 셈이다.
택배기사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택배 표준약관에 따라 택배업체 누리집에 게시된 택배 배송 조건에서 벗어나는 택배의 배송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택배업체-택배 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간접계약 구조 속에서는 택배기사와 택배업체가 승강이를 벌이면 가운데 낀 대리점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원칙적으로는 택배기사가 배송을 거부하면 대리점주가 포장 등을 개선해 달라고 택배업체에 요구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절차가 번거롭고 원청에 요청하기도 쉽지 않아 대리점주가 직접 배송을 하거나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에게 배송을 맡기기 때문이다. 대리점주 이씨도 이런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택배기사들은 통상 택배업체가 아니라 용역업체 격인 택배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다.
이 밖에 노조는 대리점주 이씨가 지난 6월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게 된 일에 씨제이대한통운 김포지사장의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도 내놨다. 씨제이대한통운이 지난 7월 김포지역 대리점 관할구역을 나누면서 대리점주를 이씨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교체했는데, 김포지사장이 이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 주장의 근거로 씨제이대한통운 김포지사장이 “(이씨를 대리점주 자리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다”고 말했다는 통화녹음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가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씨의 개인 채무 관계를 공개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리점연합회와 유족은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이 노조의 괴롭힘이라고 유언장을 통해 명백하게 밝혔다”며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앞세워 고인의 마지막 목소리마저 부정하는 파렴치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신다은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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