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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태움’ 극단적 선택 간호사 계약서엔 “1년 이상 일해야” 불법 조항

등록 2021-11-23 18:54수정 2021-11-23 19:11

보건의료노조 을지대병원 근로계약서 공개
“노동자에게 근무강제는 근로기준법 위반”
숨진 오씨와 을지대병원이 맺은 근로계약서. 사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종조합 제공.
숨진 오씨와 을지대병원이 맺은 근로계약서. 사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종조합 제공.

‘태움’(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을지대병원 신규 간호사가 병원 쪽과 노동법을 위반한 근로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은 해당 계약서 탓에 직장 내 괴롭힘에도 숨진 간호사가 병원을 그만두지 못했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한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23일 경기 의정부 을지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숨진 간호사 오아무개씨와 을지학원 의정부 을지대학교 병원이 맺은 근로계약서를 공개했다. 계약서 12번 항목에는 5개의 특약사항이 담겨있는데, 보건의료조노는 특약사항이 노동자에게 근무를 강제하고 있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보건의료노조가 공개한 근로계약서는 ‘근로계약자는 사용자의 계약해지 등이 없는 한 계약체결일로부터 최소 1년 근무할 의무가 있다’(1항)고 규정하고 있다. 또 3항에는 ‘근로자가 사직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최소 2개월 전에 사직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특정한 사유에 한해 한 달 전에 예고해야 하지만, 노동자는 특정 기간을 근무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앞서 오씨는 숨진 날 오전 9시21분께 직장 상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다음달부터 그만두는 것이 가능한가요’라고 물었으나, 상사는 ‘사직은 60일 전에 얘기를 해야하는 것’ 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화가 끝나고 2시간 뒤 오씨는 기숙사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특히 계약서 4항은 `근로계약자가 1~3항을 위반해 병원에 손해 및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1~3항 이행을 강제하도록 하기위한 배상책임도 명시하고 있었다. 유족 등은 오씨가 특약사항으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근로계약의 이행을 이유로 위약금을 설정할 수 없도록(위약 예정의 금지) 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고용계약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남은 임금도 못 받게 되는데, 위약금까지 물게 되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고용계약에 묶일 수 있어서다.

앞서 유족 등은 지난 3월부터 을지대병원에서 근무한 오씨의 사망 원인이 ‘태움’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유족 쪽의 말을 종합하면, 오씨는 지난 4월부터 월 10만원의 식대를 다 쓰지 못할 정도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그로인해 몇 개월 동안 10㎏가량 체중이 줄었다. 심야근무와 휴일근무도 많았으며, 선배 간호사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의 차트는 가치가 없다’며 오씨가 작성한 차트를 던지는 등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는 “1, 2, 3항만 있다면 사측이 선언적 의미의 문구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강제하는 4항이 있기 때문에 강제근로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근로기준법 제7조를 어긴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해당 조항을 근거로 노동자의 퇴사를 거부하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면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의정부 을지대병원과 오씨 사이의 계약서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위반 등을 조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런 계약서가 현장에서 흔하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고 상당히 특이한 사례”라며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봐 심각하게 사안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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