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아고리움에 숨진 청소노동자의 추모공간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일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청소노동자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죽음과 업무 간의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정했다.
이씨 유족을 대리하는 법률사무소 일과사람은 지난 22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아무개(59)씨의 사망사건에 대해 판정회의를 개최해 이씨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승인했다는 사실을 27일 근로복지공단 서울관악지사로부터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판정위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된 것이 맞고 수급 대상과 관련한 논의는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자신이 담당하던 서울대 기숙사 건물 직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씨는 평소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기숙사 건물을 오르내리며 100ℓ짜리 쓰레기봉투를 여러 개 나르고 화장실·독서실·샤워실 등 건물 내부도 홀로 청소했다. 이런 가운데 새로 발령된 안전관리팀장이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을 보게 하거나 복장을 품평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사건을 대리한 권동희 일과사람 노무사는 이씨의 근무기록을 살펴본 결과 일상적으로 주6일 근무를 했고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지기 전 약 3개월 가운데 온전한 휴일이 7일에 불과했다며 지난 9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재해(유족급여 청구)를 신청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은 단순히 노동시간만으로 과로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이씨가 일했던 노동환경의 강도를 종합적으로 살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씨의 사망 전 12주 간 평균 근무시간은 44시간55분으로 고용노동부 고시에 정한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52시간 초과면 업무관련성 비례·60시간 초과면 관련성 강함)에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판정위는 “이씨가 주6일 근무를 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 계단을 통해 쓰레기를 치우고 옮겨야 했던 점, 코로나19 이후 쓰레기 증가로 업무 부담이 가중된 데다 노후된 건물에서 환기가 잘 안 되는 샤워실의 곰팡이를 씻어야 했던 점 등으로 보아 업무시간만으로 산정되지 않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을 지속했다고 판단된다”고 봤다.
또 필기시험 응시 요구 등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노동부) 조사에서 일부 사실이 인정됐고 스트레스 요인이 6월 한 달 내 한꺼번에 발생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추가적인 스트레스로 작동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토대로 판정위는 이씨에게 흡연과 음주 이력이 없고 사망 관련 기저지환도 없다며 “업무와 (사망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지었다.
권 노무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그간의 주된 판정 경향과 달리 서울판정위가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이씨의 노동 환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판정”이라며 “이씨가 낡은 건물에서 고강도 청소업무를 한 것이 사망의 주된 원인이었고 직장 내 괴롭힘과 스트레스, 청소검열 등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겹쳤다는 것을 판정위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제야 고인의 숭고한 노동의 가치가 산재로 인정되어 다행이고 유족과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애써준 노동조합을 모욕한 이들의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 사망 당시 서울대 관계자들이 노조에 대해 ‘마녀사냥식 갑질 프레임을 씌운다’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씨의 남편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2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출석할 때만 해도 산재 인정이 어려울 거라 생각해 오늘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이 앞섰다”며 “산재 인정까지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도와준 노조와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판정을 계기로 서울대는 인권에 저촉되는 학내 노동환경은 없는지 돌아보고, 2차 가해를 자행한 관계자들은 스스로를 돌아봐 성숙한 스승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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