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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5년 전 하청업체 산재서도 한전 “도급사업주 책임없다” 주장

등록 2022-01-13 19:36수정 2022-01-13 19:40

감전방지장치 설치상태 확인안해
비계작업하던 하청노동자 감전사
법원 “안전 방기하고 책임회피”
하청업체보다 무거운 형량 선고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과 전봇대 개폐기 조작작업을 하다 감전사고를 당해 숨진 협력업체 노동자 김다운씨 유가족 등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고 김다운 전기 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및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다운씨 영정에 헌화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과 전봇대 개폐기 조작작업을 하다 감전사고를 당해 숨진 협력업체 노동자 김다운씨 유가족 등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고 김다운 전기 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및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다운씨 영정에 헌화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봇대 개폐기 조작작업을 하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한국전력(한전) 하청업체 노동자 김다운(38)씨의 사고와 관련해 한전이 ‘도급인 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5년 전에도 한전이 유사한 사고에서 같은 주장을 하다 하청업체보다 더 무거운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법원은 한전이 “안전관리 의무를 사실상 방기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수사·공판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2017년 11월28일 한전으로부터 충북 청주 ‘지장철탑 이설공사’를 도급받은 ㄱ업체는 이 회사 소속 노동자 ㄴ씨(당시 57살)에게 전류가 흐르는 전선 인근의 약 14m 높이의 장소에서 비계(건축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조립작업을 지시했다. ㄴ씨는 전기공사 관련 자격이 없었다. 이 경우 사업주는 고압전류에 접근할 수 없도록 ‘접근 한계거리’를 준수하게 해야 하고, 절연용 보호구와 추락방지용 안전대를 착용하게 해야 하지만 이러한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ㄱ업체는 작업 중 감전 방지를 위해 한전에 고압선로 절연방호관 설치 작업을 요청했다. 한전은 ㄱ업체의 공사가 이뤄지기 전 다른 하청업체 ㄷ업체에 작업을 맡겼다. 하지만 절연방호관 설치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아 ㄴ씨가 작업하던 구간에 노출된 충전부가 남아있게 됐다. 결국 ㄴ씨는 고압 전류에 감전된 뒤 14m 높이에서 추락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감전을 막을 절연방호관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고, ㄴ씨에게 보호구와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수사과정에서 한전은 절연방호관이 제대로 설치돼있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ㄴ씨 사망의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ㄱ업체 법인과 전무, 한전 법인과 한전 충북본부장 ㄹ씨를 재판에 넘겼다. 당시 산안법은 공사의 전부를 ‘전문분야 공사’로 도급하는 사업주에게, 해당 사업주 소속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같은 장소에서 이뤄지면 하청업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검찰은 한전이 절연 방호관 설치가 제대로 설치돼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등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한전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시행할 의무가 있는 도급사업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다운씨 사건에서 한전이 “도급인이 아니라 건설공사 발주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한전의 이러한 주장은 모조리 배척됐다.

2020년 8월에 선고된 항소심(청주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이형걸) 판결문을 보면 “한전 충북본부장 ㄹ씨는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험한 작업이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된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 할 것이고, 그럼에도 사전에 감전 사고 예방을 위한 방호관 설치가 제대로 됐는지 점검하거나 관련 법령상의 재해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했다”고 밝혔다.

한전 쪽은 “충북지역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어 현실적으로 모든 공사를 관리감독할 수 없었으므로 구체적 안전관리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ㄹ씨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서 자신을 보좌하는 안전관리인 등을 두어 현장에서 수급인들 사이의 업무 조율을 통한 실질적인 안전관리를 담당하게 할 수 있었으나 이러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현장에서 직접 안전관리를 할 직원을 두지 않았다는 점은 한전이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소홀히 취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정일 뿐, 한전이 면책되는 근거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이 사건 1심 재판부(청주지법 형사1단독 고승일 판사)는 하청업체 전무와 한전 ㄹ본부장에게 똑같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한전에는 하청업체(벌금 500만원)보다 더 무거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한전과 ㄹ본부장만 항소했지만 형량은 유지됐다.

1심 재판부는 양형이유에서 “한전은 이 사건 공사의 실질적인 이익 귀속 주체이고, 상당한 자금 능력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청업체에 공사를 하도급한 점 등을 핑계로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지정하지도 않고, 한전 충북본부장은 공사에 관한 안전관리의무를 시살상 방기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사고의 주된 원인이 노출 충전부에 대한 방호조치의 완결성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있는데, 하청업체 사이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등 종합적인 안전관리를 하지 않은 한전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한전은 노출 충전부 방호조치의 완결성 확인을 게을리한 주된 책임이 있으면서도 수사와 공판과정에서 도급 사업주의 지위를 부인하며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하고 피해 보상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전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전 쪽은 “해당 판결은 산안법이 개정되기 이전 법률에 근거해 내려진 판결로, 현재 산안법상 ‘건설공사 발주자’와 ‘도급인’ 해당 여부는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며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중으로 확정판결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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