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서울동남권물류단지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송아무개씨는 지난해 7월 한진택배 대리점인 ‘ㄷ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ㄷ기업은 지에스(GS)숍이 티브이(TV) 홈쇼핑을 통해 판매한 제품만 고객에게 배송하는 홈쇼핑 택배업체였다. 계약기간은 2년이었지만, 송씨는 5개월만인 지난해 12월 ㄷ기업에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생각과 달리 수입이 적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홈쇼핑 택배라 (이전 직장보다) 처우가 더 좋을 거라 생각했지만, 적은 물량을 넓은 지역에 배송하다보니 투여되는 시간·차량유지비에 견줘 수입이 적었다”고 말했다.
송씨가 퇴사 의사를 밝히자 ㄷ기업은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계약서에는 ‘수탁자(택배기사)의 요청에 의해 계약기간 도중 계약해지를 요청했을 때, 수탁자는 후임자를 모집하여 집·배송 업무 전부를 인수인계 해야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인수인계를 못할 경우 후임자 모집에 대한 광고비 등의 책임을 물어 영업점에 50만원을 지급해야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송씨는 어쩔 수 없이 ㄷ기업 일을 계속하고 있다. 송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약관심사청구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7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생활물류법)을 시행하며 송씨와 같이 불공정 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지만, 택배기사들 사이에선 이런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아 여전히 불공정계약이 유지되고 있다. 택배 대리점은 계약서를 근거로 일을 그만두려면 직접 후임자를 구해오라고 요청하고, 일을 그만두고 싶은 택배기사들은 직접 지역신문에 구인광고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송씨가 ㄷ기업과 체결한 계약은 국토부가 지난해 7월27일 공고한 ‘택배서비스산업에 관한 표준계약서’와 한진택배를 운영하는 ㈜한진이 생활물류법의 택배서비스사업자 등록을 위해 제출한 표준계약서에 위배된다. 해당 계약서들에는 ‘택배기사의 사정으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60일전에 대리점에 통보하고 업무가 원활하게 이전되도록 협조’할 의무만 있을 뿐 후임자를 구해야하는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계약 종료 시 택배기사에게 후임자를 구할 책임을 부담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택배사업자 등록제를 시행하며 표준계약서가 현장에 조기 보급·안착될 수 있도록 기존 불공정 계약서 갱신을 권고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 표준계약서 형태로 갱신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송씨는 “상당수 택배 기사들은 표준계약서의 내용조차 모른다”며 “계약서가 부당하다 생각해 한진 본사에도 여러차례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며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28일 한진택배 쪽은 <한겨레>에 “대리점과 택배기사와의 계약관계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전체 대리점에 대해 불공정 거래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계도하겠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