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 농성 중인 원유운반선으로 공권력이 투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자 대우조선하청 하청 노동자 110여명이 지난 20일 오후 선박 앞 수문을 지키고 있다. 이 자리는 바로 앞이 30m 낭떠러지, 뒤로는 바다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50일째 파업 중인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임금 인상마저 포기하고 협상 타결을 서두르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과 하청업체가 파업에 대한 민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교섭이 난항에 빠졌다. 경찰은 조선소에 경찰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 ‘공권력 투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회사 협의회’는 일주일째 교섭을 이어갔지만 파업 손해 면책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초 노사 협상의 핵심은 임금인상이었지만, 전날 하청업체가 원청과 별도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며 쟁점이 손해배상 소송으로 바뀌었다.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지난달 22일부터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제1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를 점거하고 배 진수(공정이 완성된 선박을 도크에서 안벽으로 옮기는 작업)를 막으며 투쟁 중이다.
조선하청지회는 “7천억원 피해”를 주장하는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예고한 손배소와 관련해서도 소송 대상을 조선하청지회 임원 5명으로 한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전날 현장을 방문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도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해 중재를 요청했지만, 이 장관은 ‘범위를 좁힐 수는 없다’는 뜻을 지회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대우조선 쪽은 “회사가 손해본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손배소를 준비해서 원칙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청업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통상 한 업체가 폐업하면 같은 직종의 다른 업체가 인원을 승계하는 관행이 조선소에 존재해왔는데, 파업을 전후해 폐업한 업체들의 노동자들의 고용을 다른 업체가 승계해야 한다고 조선하청지회는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하청업체 쪽은 “고용승계가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파업 손해 면책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조선하청지회는 다시 원점에서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태도다. 협상 타결을 위해 임금 인상 등을 포기했지만,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임금 30% 인상’을 다시 요구하고 투쟁의 수위도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다. 애초 조선하청지회는 여러 차례 교섭을 거치면서 하청업체가 파업 전인 올해 초 제시했던 ‘임금 4.5% 인상’을 수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협상이 난항을 겪는 동안 ‘파업 마지노선’은 점점 가까워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민들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공권력 투입을 시사한 데 이어, 경찰도 조선소 경찰력을 8개 중대(1개 중대 60~80명)에서 12개 중대까지 늘렸다. 이날 오후엔 정찰용 경찰헬기 1대가 정찰에 나서면서 현장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됐다.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이날 조선하청지회 파업 철회를 요구하며 총회를 열고 금속노조 탈퇴 안건을 상정했다. 조합원 절반이 투표에 참여해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금속노조 탈퇴안이 가결되며, 투표 결과는 22일 오후께 나온다. 23일부터는 대우조선해양 임직원 대다수가 여름휴가를 떠나는 만큼, 조선하청지회의 도크 점거농성도 위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거제/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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