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연장하려고?…노동부, IT회사 ‘추천 직원’ 모아 간담회

이정식 노동부 장관 현장 간담회서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의견수렴
노조 배제…‘사쪽 섭외’ 노동자 참여
게임·IT업계 노조 11곳 성명 발표
“노동부, 회사 입맛대로 제도 변경 의도”

게티이미지뱅크

고용노동부가 노동시장 개혁과제로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보기술(IT) 노조들이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싶다면 노조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주장했다. 노동시장 개혁과제에 대한 노사 간 입장차가 첨예한데도, 노동부가 회사 쪽에 편향된 노동자만 모아놓고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11일 오후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아이티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진짜 현장을 배제한 고용노동부의 ‘아이티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는 가짜 의견수렴”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당근마켓·토스의 인사노무담당자와 회사 쪽이 섭외한 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현장에는 노동부가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한 정책 대안 수립 연구를 맡긴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일부 위원도 참여했다.

아이티위원회는 성명에서 “정책의 당사자인 아이티 노동자를 배제한 채 사쪽(인사노무·채용 담당)인사만 불러 행사를 개최했다”며 “노동자의 목소리도 들었다고 발표하였으나 ‘노동자' 또한 사측 인사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이티위원회는 “대한민국은 노조와 노사협의회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데도, 회사 쪽에 노동자를 선별해 참여하도록 요청했다”며 “경영자들의 입맛에 맞게 제도를 바꾸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요 아이티(IT·정보기술) 기업 인사담당자·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해당 간담회에서는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성을 높여 나가는 방향은 시대적 흐름인 것 같다” “근로자의 선택권을 더 높이는 차원에서라도 선택근로제의 정산 기간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등 노동부가 근로시간 개편 필요성을 밝히며 근거로 들었던 말들이 ‘현장의 목소리’로 정리돼 ‘보도참고자료’ 언론에 배포됐다. 해당 간담회에 참가한 회사 가운데 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에는 아이티위원회 소속 노조 지회가 설립돼 있지만, 간담회 참석 요청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티위원회는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할 힘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에 불리한 선택지만 추가한다고 근로시간 자기결정권 확대가 될 수 없고, 노동자가 그런 동등한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수많은 직장 내 괴롭힘도 없었을 것”이라며 “엠제트(MZ) 세대의 요구라는 핑계를 대며 진짜 엠제트 세대 노동자가 원하지도 않는 제도를 바꾸려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아이티위원회는 또한 “아이티 산업에서 이중구조·양극화 문제를 말하고 싶다면 네이버·카카오의 자회사 문제부터 들여다보라”고 했다. 최근 네이버지회는 네이버 본사보다 임금·처우가 낮은 그린웹서비스·엔아이티서비스(NIT)·엔테크서비스(NTS)·인컴즈·컴파트너스 등 네이버 손자회사의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교섭이 결렬돼 쟁의행위를 예고하고 있다.

아이티위원회는 “아이티위원회는 빠른 시일 내에 아이티 노동조합 대상의 간담회를 개최해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들을 것을 노동부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화섬노조 산하 아이티위원회에는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에스케이(SK)하이닉스·씨디네트웍스·웹젠·포스코 아이씨티(ICT), 한글과컴퓨터, 엘아이지(LIG)넥스원, 에이에스엠엘(ASML) 코리아 등 11곳 사업장의 노조 지회가 속해있다.

박태우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