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4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2년을 맞아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거리투표와 전시회 등 기념행사를 열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학원에서 일하던 ㄱ씨는 상사에게 험담을 듣고 괴롭힘 사실을 원장한테 신고했지만, 원장은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다. ㄱ씨는 “원장은 문제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인 것처럼 말하고 나에게 다른 학원으로 가라고 했다”며 “원장에게 얘기한 이후 왕따와 퇴사 협박은 갈수록 심해졌다”며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지만 ‘사업주에게 신고했다는 증거가 있느냐’며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고 지난달 ‘직장갑질119’에 밝혔다.
2019년 7월16일부터 직장내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ㄱ씨 사례처럼 사업주·관계기관에서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직장내괴롭힘 경험이 있는 이 가운데 73.5%는 ‘참거나 모른 척’하고, 15.8%는 퇴사했다고 답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 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초 만 19살 이상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를 10일 보면, 지난 1년간 직장내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이들은 291명으로 전체의 29.1%로 나타났다. 법 시행 직후인 2019년 9월 조사 때 44.5%에 견줘 15.4%p 줄어든 수치다. 이번 조사에서 직장내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이들은 35.4%로 나타났는데, 이는 3년 전 38.2%와 비슷한 수준이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직장내괴롭힘의 빈도는 줄었지만, 노동자들이 느끼는 심각성은 여전히 유사한 셈이다.
직장내괴롭힘을 경험한 291명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 물었더니, 회사나 관계기관에 신고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6%에 그쳤다. ‘참거나 모른 척’한 비율이 73.5%로 가장 높았고,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23.4%)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15.8%) 경우도 있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74.5%)가 가장 많았다.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12.8%)가 뒤를 이었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관련 인식과 교육 수준은 고용형태와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달랐다. 응답자의 31.3%는 해당 법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답했는데, 비정규직(40.0%)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43.6%)에서 ‘모른다’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47.8%는 직장에서 직장내괴롭힘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비정규직(28.5%)보다 정규직(60.7%), 5인 미만 사업장(21.2%)보다 300인 이상 사업장(67.2%) 노동자의 교육 경험 비율이 높았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갑질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지만, 괴롭힘을 당했을 때 구제절차인 직장 내에서의 신고 절차나, 노동부 등 공적 신고 절차는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신고에 따른 피해자의 불이익이 없도록 피해자 보호조처를 강화하고 사업주에게 실질적인 예방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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