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도계에 있는 경동 탄광 광부들이 일을 마치고 갱에서 나오고 있다. 전제훈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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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전국 347개 석탄 광산에서 6만2천여명의 탄광 노동자가 일했다. 그해 석탄 생산량은 2564만톤에 이르렀다. 강원도 태백과 정선, 경북 문경과 점촌 등 탄광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막장에서 탄을 캐는 광부의 삶은 위험천만했다. 1978년부터 1989년까지 해마다 평균 187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갱의 천장을 바치던 동바리에 깔리고 탄에 묻히고 가스에 질식했다. 하지만 산업전사로 칭송했고, 돈벌이가 됐다. 1980년대 초 광부 한달 월급은 25만원 수준이었다. 당시 교사 월급의 3배였다. 광부가 되기 위해 체력 검증을 거쳐야 했고,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빽’을 동원하기도 했다. 석탄공사 직영 탄광 광부가 되는 게 서울대나 육군사관학교 합격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막장은 기회였고, 살길을 마련해준 광부의 하늘이었다.
강원도 삼척 경동-상덕광업소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 김진수씨. 그는 동료 광부들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다. 지난 29년 동안 막장에서 탄을 캐 자식 둘을 번듯하게 키웠기 때문이다. 두 딸은 선생님과 간호사가 됐다. “20대에 시작해 환갑이 다 되도록 막장일을 하지만, 그래도 탄광 덕에 애들 학교도 보내고 가정도 잘 건사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강원도 태백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자연스레 광부가 됐다. 1980년대 중반 4대 민영 탄광으로 불린 태백시 통동의 한보광업소에서 광부 인생을 시작했다. “그냥 자라면서 보는 게 광부였고, 여긴 광산밖에 없었어요. 큰 고민 없이 광부가 됐고 그게 살길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한보그룹 부도와 채산성 악화로 2008년 한보광업소가 문을 닫았고, 그는 경동-상덕광업소로 일터를 옮겼다. 갱을 뚫고 들어가 폭파하는 케이빙 채굴은 힘겨운 일이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4년 전 발파 과정에서 튕겨 나온 수제비만 한 쇠붙이가 대퇴부에 박혀 한달 동안 입원하기도 했어요. 가슴이나 얼굴이면 즉사했을 텐데, 살이 많은 허벅지라 다행이었죠. 그래도 애들도 잘 컸고, 지나고 보니 시커먼 얼굴로 위험 속에서 일했지만 그래도 좋았고, 인생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대책이라는 걸 모르고 이 일이 영원할 줄 알고 해왔는데, 이제 완전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니….” 탄광이 사라지고, 화양연화 같은 막장 속 광부의 삶도 끝이 보이는 듯해 서글프다고 했다.
그 많던 탄광들은 다 어디 갔을까? 1983년부터 막장에서 탄을 캐며 동료의 삶을 기록해온 광부 전제훈씨와 동료 김진수(왼쪽부터), 김충무, 이주환씨가 지난달 1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석탄 채굴은 더는 경쟁력이 없다. 대표적 탄소에너지다. 정부는 이미 1989년부터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추진했다. 국민소득 증가, 석유와 가스 보급으로 당시 수요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전국 300여개 석탄 광산 가운데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석탄공사가 직영하는 전남 화순광업소, 태백 장성광업소, 삼척 도계광업소 등 3개 국영 탄광과 국내 유일의 민영 탄광인 삼척 경동-상덕광업소 등 4개뿐이다. 석탄공사는 함백, 영월, 은성, 화성, 성주 등 9개 직영 광산 가운데 3개 광업소만 남기고 일찌감치 폐광했다. 한보, 동원, 동신, 경일, 국일, 풍원, 신원 등 번성했던 민영 탄광도 채산성 악화 등으로 잇따라 문을 닫았다.
산업전사로 대우받던 탄광 광부도 이젠 사라지는 직업이다. 현재 운용 중인 4개 탄광에 종사하는 이들은 2021년 현재 1950명에 불과하다. 이들 가운데 사무직, 차량 운행 등 업무를 하는 이들을 빼면 실제 갱 안에서 일하는 광부는 70% 안팎인 13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석탄공사 노조는 가장 오래된 탄광인 화순광업소 272명의 직원 가운데 160명 정도가 갱 안에서 일하고, 규모가 큰 장성광업소도 500여명이 광부로 일한다고 전했다. 민영인 경동-상덕광업소도 800여명 직원 가운데 갱에서 일하는 광부는 600여명이라고 한다. 탄광의 퇴조는 석탄 생산량에 대한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2564만톤이던 석탄 생산량은 지난해 89만8천톤으로 96.5% 급감했다.
1983년부터 광부로 일하며 화순광업소, 철암광업소, 경동-상덕광업소 등에서 동료 광부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해온 전제훈씨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린 광부로 막장에서 인생을 다 보냈잖아요.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라져 가는 직업이 됐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아요. 지난 50여년 한국 경제에서 우리가 주인공, 산업전사라고 했는데 이 직업이 없어지고, 세월이 지나면 우리의 사연, 기록도 다 묻히는 거잖아요. 그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직접 갱 안에서 일하며 동료들을 찍어요.” 탄가루에 범벅된 얼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장 등 그의 사진엔 광부의 고단한 삶이 담겨 있다.
장성 탄광 광부들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석탄공사 직영 광산 3곳도 사멸 수순에 들어섰다. 석탄공사와 노조는 올해 2월 화순, 장성, 도계 등 3개 광업소를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광하기로 합의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제6차 석탄산업 장기계획에 따라 화순광업소를 2023년에 폐광하고, 2024년 장성광업소, 2025년 도계광업소를 폐광하기로 결정한 뒤 광부들은 반발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생계를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은 올해 2월 입갱 농성까지 예고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석탄공사와 노조는 20여일 만인 지난 3월2일 극적으로 타협했다. 정부와 석탄공사는 폐광으로 직업이 사라지는 광부와 광업소 직원들에 대한 보상으로 일종의 명예퇴직금인 특별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노조와 광부들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석탄공사 노조 장성광업소 지부 김재엽 총무부장은 “더 일하고 싶어도 정부의 폐광 계획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폐광 필요성은 광부들도 인정한다”며 “광물자원이 한계에 있고, 재채굴로 위험도 커지니 그만두고 싶어 하는 광부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매장량 고갈로 한번 채굴한 곳에서 다시 석탄을 캐고, 지하 수백미터까지 갱을 파고 들어가는 심부화 등으로 경쟁력을 잃었다는 걸 광부들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연간 적자가 1천억원을 넘어선 석탄공사는 지난 7월 채탄법 등을 개발해온 60년 역사의 내부 연구소도 폐쇄했다.
사고도 잇따랐다. 2011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장성광업소에서 316명, 도계광업소에서 213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했다. 단일 사업장 사망 사고 전국 1, 2위의 불명예를 짊어진 지 오래다. 장성광업소에선 지난 9월14일에도 지하갱도 675m 지점에서 매몰 사고가 발생해 광부가 사망했다.
폐광하면 광산에 기대 버텨온 화순, 태백, 삼척 등 지역 경제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와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폐광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정부와 석탄공사는 조기 폐광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11월16일 폐광을 위한 내년 예산 1600억원을 통과시켰다. 폐광 및 감산 근로자 대책비, 출수 피해방지비, 폐광용지 매입비 등이다.
그러나 광부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폐광 합의의 핵심인 특별위로금 액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 장성광업소 지부 김재엽 총무부장은 “애초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는 광부들을 위해 노사정이 모여 특별위로금 액수를 정하기로 합의했는데, 아직 정부나 석탄공사에서 구체적인 액수를 내놓지 않고 있다”며 “광부들 분위기가 정말 안 좋다. 여차하면 다시 파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 광부들은 내년 말에 먼저 폐광할 전남 화순광업소를 눈여겨 지켜보고 있다. 화순광업소 광부들에게 지급되는 특별위로금이 자신들이 받을 위로금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광 1년을 앞둔 화순광업소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화순광업소 272명에게 총 167억원의 특별위로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순 계산으로 1인당 6139만7058원씩 돌아간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는 것에 견줘 보상금이 적고, 기본급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특별위로금은 기본급이 많은 일반직에 유리하고, 각종 수당으로 임금을 보전해온 광부들에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게 문제로 떠올랐다. 노기석 석탄공사 노조 화순지부 사무국장은 “조기 폐광에 따른 특별위로금과 일자리를 잃는 광부 재취업을 위해 광업소 부지를 매입해 대체 산업 개발 등 활로를 확보해야 한다”며 “국회 상임위에서 특별위로금을 15억원 증액해 182억원을 통과시켰고 화순광업소 부지 매입비도 일부 반영했는데 본회의에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아직 산업통상자원부와 석탄공사, 노조 등 3자가 합의문을 쓴 상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1999년 강원도 삼탄광산 노동자들이 ‘석탄생산축소정책 반대 갱내 단식농성’을 벌이자 11개 광산 노동자 대표자들이 지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석탄 광산이 폐광한다고 광산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2021년 기준 전국에 4개 탄광 말고도 321개 일반 광산이 운용 중이다. 석회석류 광산(104개), 고령토류 광산(78개)이 주류를 이루고, 납석(23개), 장석(22개) 광산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금광이 9개, 은광도 5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4개 석탄 광산과 몇몇 대형 석회석 광산, 고령토 광산을 빼면 대부분 영세하다. 연간 매출규모 5천만원 미만 광산이 136개, 5천만원~1억원 미만 광산이 24개에 이른다. 특히 20개 국내 금속광의 경우 13곳이 매출액 5천만원 미만이다.
이런 광산도 대부분 석탄 광산처럼 갱을 파내는 광업을 한다. 충북에서 석회석 광산 삼호 광업소를 운영하는 박창현 대표는 “이제 석회석, 고령토 광산도 노천 채굴은 못 합니다. 먼지, 환경오염 우려 등으로 정부는 몇년 전부터 갱 속에서 채굴하는 광산만 허가해요”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광산이 탄광처럼 굴을 뚫고 들어가 원석을 폭파한 뒤 옮겨와 선별하는 ‘굴진 채굴’ 방식으로 운용한다는 것이다.
탄광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 가운데 이런 광산에서 새 일자리를 마련하는 이들도 있다. 탄광에 견줘 암석 등 지질이 단단해 붕괴 위험도 덜하고, 분진도 적다고 한다. 하지만 석회석, 고령토 광산은 광부보다는 중장비 등 기계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한다. 실제 321개 일반 광산 종사자는 3556명으로 1개 광산 평균 11명에 불과하다. 박창현 대표가 운영하는 석회석 광산도 “광부는 4명뿐”이라고 했다.
임금도 탄광에 견줘 턱없이 낮다. 국내 4개 석탄 광산의 2021년 1공(하루 8시간) 평균 임금은 30만1756원이다. 월평균 급여는 610만4천원이다. 반면 국내 광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회석류 광산 1공 평균 임금은 15만8857원, 월평균 급여는 382만원이다. 석회석류 광산 다음으로 많은 고령토류 광산은 1공당 평균 임금은 16만2139원으로 석회석류 광산보다 약간 높다. 그런데 고령토류 광산 광부의 월평균 임금은 263만8천원에 그친다. 일거리가 지속적이지 않은 탓이다.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 매몰됐다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박정하 광부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1982년부터 강원도 정선의 동원탄좌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원탄좌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폐광근로자협의회를 결성해 광부들의 일자리를 찾았지만 정선카지노 부대시설 관리, 주변 도로 정비, 눈 치우기 등 허드렛일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 다시 취업했다. 하지만 경력 27년차 베테랑 광부인 그는 지하 190m 땅 밑에서 하루 8시간 일하면서 15만7천원을 받았다. 그나마 지난 5월 회사가 그의 경력 등을 높이 평가해 14만4800원이던 1공당 임금을 1만2천원 더 올려준 것이다. 그는 “그래도 임금 보전을 위해선 하루 16시간씩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문을 닫은 탄광들의 현판이 강원도 태백석탄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대다수 광부는 박정하 광부처럼 다른 광산으로 옮겨가도 기존에 견줘 턱없이 낮은 임금을 감내해야 하니, 탄광에 일자리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폐광을 염두에 둔 석탄공사 직영 광산에선 2016년 이후 신규 광부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영인 경동-상덕광업소는 그나마 광부를 뽑지만 계약직처럼 운용한다. “우리처럼 오래전부터 일한 광부는 퇴직할 때를 대비한 일종의 명퇴금인 대책비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4~5년 전부터 새로 오는 광부들한테는 대책비를 안 줘요. 2년 이상 채용할 경우 대책비를 줘야 하니까 계약직처럼 21개월만 일하고 퇴직시켜요.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이들에게 석달 이상 쉬고 재입사하라면 누가 다시 오겠어요.” 14년차 광부인 이주환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이런 구조는 기존 탄광 광부들의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진다. 할당된 채탄량을 맞추기 위해 남은 광부들이 일을 더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도 대다수 탄광 광부들은 어둡고 위험한 막장을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탄광이 있어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백에서 아내와 10여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한 이주환씨는 미용실이 답답해 광산을 택했다. “막상 광부가 됐는데 너무 힘들었죠. 그냥 뛰쳐나오고 싶어 미치겠더라고요. 그런데 미용실로 다시 돌아가면 저놈 며칠 못하고 끝냈다는 욕을 먹을까 봐 오기로 버텼죠. 이젠 이게 마지막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광부 일, 좋았다 싫어졌다 해요. 그게 지금 솔직한 심정이죠. 하지만 일이 힘들든 어쨌든 탄광이 오래 지속되길 바라죠.” 그에겐 고등학생 쌍둥이가 있다.
25년째 탄을 캐고 있는 광부 김충무씨의 바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파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염색공장을 운영하며 동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납품했다. 1990년대 중반 일주일 순이익이 300만원을 넘어설 정도로 잘나갔다. 하지만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부도를 맞은 그는 28살이던 1997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태백에 발을 들였다. “광부로 첫 월급이 87만원이었어요. 이걸 받고 계속 일할 것인지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죠. 다른 염색공장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왔어요. 그런데 저놈 제 공장 망해 먹었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버텼죠. 모든 부모가 그럴 테지만 저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시 첫째가 막 돌 지났고, 둘째는 갓난아이였거든요.” 김충무씨는 “이제 큰딸 시집도 보냈고, 지금 생각해보면 잘 왔고, 잘 버텼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이 있다면 위험한 만큼 임금을 더 받는 것이다. “우리 월급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탄을 캐러 지하 400m를 수직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수평으로 4000m를 더 들어가요. 막장까지 가는 데만 40분 이상 걸리죠. 1년 내내 땅속에서 일하면 지열로 몸속 수분이 증발해 탈수로 손발이 틀어지는 일도 잦아요. 일 끝내고 목욕탕에서 담배 한 대 물고 광부들끼리 ‘계속 이렇게 살까?’ ‘혀 깨물고 죽는 게 낫지 않나?’ 이런 얘기를 웃으며 농담처럼 해요. 그래도 모두가 바라는 건 이 일을 좀 더 오래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가 지난해 받은 1년 임금은 6천만원 정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갈 땐 함께 들어가도 나올 땐 누구 하나 빠질 수 있다’는 위험천만한 막장일의 대가치곤 작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들이 일하는 경동-상덕광업소는 아직 문을 닫는다는 계획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도 한번 채굴하고 지나간 자리를 다시 파고 있다. 석탄 매장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탄광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그래서 인근 석탄공사 직영 광산인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자신들이 남은 탄을 계속 캘 기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무도 보장할 수 없지만 힘겹고 위험한 막장 속 화양연화가 지속되길 바라는 간절함이다.
태백 정선 삼척/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참고 문헌: <2021 광업·광산물 통계연보>(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사라져 가는 기억, 한국의 탄광>(한국문화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