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는 지난해 연말까지 2년간 파견직으로 일했다. 원청 회사는 그대로였지만 ㄱ씨 의지와는 상관없이 2개월, 3개월, 6개월 단위로 원청이 하청 업체를 바꾸었다. 근무 장소와 담당 업무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때마다 ㄱ씨는 사직서를 쓰고 새로 근로 계약서를 써야 했다. ㄱ씨가 원청에 퇴직금 문의를 했더니 계약 단위가 2∼6개월이어서 지급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ㄱ씨는 “노동자 의지에 상관 없이 원청이 시키는대로 했는데 결국 법을 악용해서 퇴직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었다”며 직장갑질119에 제보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4일 자료를 내어 원청 4대 갑질로 △폐업 △임금체불 △성희롱 △괴롭힘을 소개했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해 하청이 하루아침에 폐업을 하거나, 업체 이름만 바꿔서 다시 계약을 하는 등 ㄱ씨 사례처럼 잦은 계약 변경이 다반사였다. ㄴ씨는 지난달 직장갑질119에 “회사가 12월31일부로 사업을 종료한다. 제철소 내에서 단위 공장을 운영 중이었는데 도급계약 종료로 폐업했다”며 “1월2일에 지역 고용노동청에 가서 신고부터 해야 하는지” 상담 요청을 하기도 했다.
원청회사가 도급 금액을 주지 않아 하청노동자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도 많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임금체불 피해를 신고한 노동자 수는 21만6972명으로, 체불액은 1조2200억원이다. 2021년 전체 체불신고액 중 30인 미만 사업장 체불신고액이 74%를 차지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을 보면, ‘한국회사에서 원청 갑질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87.6%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한국사회에서 하청노동자가 받는 처우의 정당성’을 묻는 항목에는 ‘정당하지 않다’는 응답이 89.6%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최근 씨제이(CJ)대한통운 판결을 비롯해 원청의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 판정이 계속되고 있다”며 “노동관계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며, 고용형태의 다변화 등 변화하는 현실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만 수십 년 전에 머물러 있다. 법리와 현실에 눈감은 채 노조법 2·3조 개정을 미루는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노동자·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노조 파업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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