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규모가 작은 회사에 취업한 ㄱ씨는 지난해 말 회사에서 경영 사정을 이유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해고를 통보받았다. 그런데 회사는 해고나 권고사직으로 처리할 수 없으니 자진 퇴사라고 적힌 사직서를 내밀며 서명을 강요했다. 회사는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에 ㄱ씨를 등록하고 지원을 받아왔는데, ㄱ씨를 비자발적으로 퇴사시키면 그동안 지원받은 인건비를 도로 반환해야 하는 탓이다. 자발적 퇴사의 경우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ㄱ씨는 사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ㄱ씨처럼 비자발적으로 퇴사한 이 셋 중 둘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해 12월7일∼14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5일 발표했다. 지난해 1월 이후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했는지 물은 결과를 보면, 13.1%가 ‘그렇다’고 답했다. 실직 경험은 정규직(4.8%)이나 노동조합원(5.6%)보다 비정규직(25.5%)이나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이(14.2%)의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런데 비자발적 실직 경험이 있는 131명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이들이 67.2%(88명)에 달했다. 그 이유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아서’가 42%로 가장 많았고 ‘고용보험에 가입했으나 실업급여 수급자격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서’가 26.1였다. ‘기준을 충족시켰으나 자발적 실업으로 분류돼서’라는 응답도 15.9%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몰아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일자리 질을 불문하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구직활동 촉진과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내용의 ‘고용 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의 수급액을 깎는 방안도 상반기 안에 내놓을 계획이다.
강민주 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정부는 실업급여 축소를 말하기 전에 비자발적 실업의 원인을 제대로 조사하고 실질적인 비자발적 실업임에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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