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가운데)이 1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 실태 확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막 야간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하고 나온 참이에요. 사무실 면적은 서울시에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연면적의 15~16% 정도로 줄였고, 산별노조가 사무실을 쓰긴 하지만 전국민주일반노조나 희망연대노조 같은 취약 노동자를 위한 곳들이고요.”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의 이시정 사무국장이 복지관의 모습과 상황을 하나씩 되짚었다. 정부는 12일 강북노동자복지관을 고용노동부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지침에 어긋나 운영상 문제가 있는 54곳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양대 노총 ‘지역본부’ 외의 노조 사무실이 입주했고, 사무실 비중이 건물 연면적의 15%를 초과했다는 이유다.
12일 노동부는 전국 102개 근로자종합복지관(근로자복지관) 실태를 전수 조사한 결과, 54개 근로자복지관에 노동조합 사무실이 과다하게 입주하는 등 “절반가량이 정부지침과 달리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근로자복지관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운동 시설, 강연 등 복지 활동을 벌이는 공간이다. 현재 58개 복지관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역본부 등이 위탁 운영한다. 최근 노조에 대한 정부의 공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근로자복지관의 ‘사무실 운영’을 문제 삼고 나선 셈이다. 정부는 운영실태 확인 결과를 공개하며 양대 노총이 운영 주체인 경우에만 ‘한노’ ‘민노’로 표시했다.
노동부는 우선 근로자복지관 42곳(국비 지원 27곳, 자치단체 15곳)에 산업별 노조 사무실 등이 입주해 있는 것을 지적했다. 총연합단체의 지역 대표기구(지역별 노조)만 근로자복지관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노동부 ‘노동복지회관 및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지침’(운영지침)을 어겼다는 것이다.
또 △연면적 15%만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운영지침을 어긴 곳 31개 △노동자 복지가 아닌 임대 수익 목적으로 시설을 입주시킨 곳 10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근로자복지관은 일부 노동조합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근로자, 특히 근로복지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미조직·취약계층 근로자를 위한 시설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그동안 각 지역 복지관별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시정해왔는데, 왜 이 시점에 갑자기 정부가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발표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조사의 배경으로 설명한 것은 2020년 감사원이 발표한 서울시 기관운영감사의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 부적정 및 시설기준 미비’로, 자치단체에 대한 3년 전 감사다. 노조 조합비 회계장부 내지 제출 요구, 미제출 노조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 중단과 과태료 부과에 이어 최근 노조 재정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노조 때리기’ 연장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강북노동자복지관처럼 지방자치단체가 건설비 100%를 부담해 노동부가 운영에 개입할 수 없는 ‘지방자치단체 자체 예산 복지관’(자치단체 복지관)도 이번 전수 조사 결과에 포함됐다. 근로자복지관은 건축할 때 국비 50%를 지원하는 ‘국비 지원 복지관’과 지자체 예산으로 지은 자치단체 복지관으로 나뉜다. 정부가 기준으로 삼은 지침은 국비 지원 복지관에만 해당한다. 자치단체 복지관은 각 지역 조례에 따라 운영한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사용으로 지적한 사례는 정부 기준과 지방정부 보조금 사업 운영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마치 총연합단체가 정부 재산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양 호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짚었다.
정부는 자치단체에 근로자복지관 운영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 지자체가 제출한 운영실적 보고서 등을 노동부 누리집에 공개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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