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알앤티 독성 간염 피해자인 김아무개(30)씨가 창원지법 법정동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사고 이후 현재까지도 피부 질환을 앓고 있는 김씨는 올해 초 대흥알앤티를 퇴사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피해자는 가운데 끼어서 그냥 구경만 하는 꼴이 된 것 같습니다”
26일 오후 3시께 창원지법 218호 법정 증인석에 선 ‘산재 피해자’ 김아무개(37)씨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경남 김해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대흥알앤티에 다니던 김씨는 지난해 2월 회사에서 유해화학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을 함유한 세척제를 사용하다가 독성 간염(화학물질 흡입 등으로 인한 간 기능 손상) 피해를 입었다. 김씨는 피해자 13명 가운데 세번째로 중독 수치가 높은 피해자다. 김씨는 이날 재판부에 피해자 발언을 신청해 법정에 섰다. 피해자 진술은 지난해 7월 재판이 시작된 뒤 8차 공판인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날 법정에서 김씨는 “회사가 1년 동안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회사의 책임을 묻는 사법 절차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소외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재판에 참석해 보고 있었는데…회사에서 15년 이상 일한 관리자가 우리가 쓰는 물질도 모른다고 답하는 것을 보았고…회사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산재 피해 이후 회사 쪽 태도 및 안전 측면에서 변화가 없는 작업장 상황 등을 빼곡하게 적어 온 에이포(A4) 용지를 또박또박 읽어내려 가던 그는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빠다. 일이 힘든 건 참고 할 수 있지만 다치면 일을 하지도 못하고 한 가정의 가장 노릇도 못하게 된다”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떨렸다. 이날 법정에는 김씨와 같은 피해자 8명이 함께 참석해서 피고인 신문 등을 지켜봤다.
지난해 2월 노동자 13명이 집단 독성간염 판정을 받은 ‘대흥알앤티’ 대표이사가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산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흥알앤티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만 인정돼 기소됐다.
피해자들은 재판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받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8일 피해자 쪽 변호인단은 사건 증거기록의 열람·등사를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재판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지난 1월에는 공판기록 열람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해 재신청을 통해 일부 허용받기도 했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금속노조로부터 변호인단 지원을 받기 전까지는 피해자 진술을 할 수 있는 줄도 몰랐다”며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증거기록 열람이 제한되면 피해자들의 알 권리가 제한되고 재판에 참여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 김아무개(37)씨가 적어 온 발언문 중 일부.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김씨 등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박다혜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김용균씨 재판 때는 일부 주요 증거를 특정해서 신청했을 때 모두 허가받았다”며 “자료가 광범위하다면 특정해서 줄여달라고 하면 되는데 일체 열람을 거부하는 사례는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 사고로 사망한 김용균씨 사건과 관련해 1심 재판부는 증거기록 열람을 거부했지만, 법정에서 증거 하나하나를 다뤘기 때문에 증거에 대한 접근권이 그나마 보장됐다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피해자들을 상대로 양형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올해 초 대흥알앤티를 퇴사한 김아무개(30)씨는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이제라도 주어져서 다행”이라며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여전히 피부 질환을 앓고 간이 회복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이런 얘기를 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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