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기도 시흥의 한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통해 설치 중인 조립된 거푸집이 강풍에 흔들리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제공
#1. 지난 1월 서울 강서구 한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으로 운반하던 철골 기둥이 지상의 20톤 트럭 운전석을 덮쳤다. 다행히 인명 사고는 없었지만, 1200만원 상당 차량 수리비가 발생한 위험천만한 사고였다. 당시 현장에서 다른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다 사고를 목격한 ㄱ(56)씨는 “철골 운반은 지게차를 이용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공사 비용을 아끼려고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이런 운반 작업을 요구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2. 지난 4월 경기도 포천의 한 건설 현장에선 타워크레인 조종사 ㄴ(54)씨가 최대 순간풍속 22㎧의 강한 바람에도 타워크레인을 운전해야 했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에 따라 순간풍속이 15㎧ 초과 땐 운전을 멈춰야 하지만, 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다. ㄴ씨는 “작업을 거부했더니 원청회사에서 직접 전화와 ‘태업이냐, 신의성실 의무 위반이다’며 압박했다”며 “신고하면 정부가 면허증을 취소한다는데 어떻게 작업을 거부하겠냐”고 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3월9∼10일 타워크레인분과 소속 조합원 220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위험 작업을 강요 또는 지시받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73.4%(1620명)가 ‘있다’고 응답했다. ‘없다’는 응답은 26.6%(587명)에 그쳤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요구받은 작업 유형으론 ‘기상악화에도 작업강행’(23.56%), ‘신호수 미배치 등 안전 미확보 작업 강요’(18.4%), ‘인양물 낙하 및 파손 등 위험작업 강요’(16.81%) 등이 꼽혔다. 건설노조는 인양물 낙하 등의 위험성이 가장 큰 작업으로 ‘항공마대 인양’을 꼽는다. 항공마대는 합성수지로 만든 큰 보자기로, 건설 현장에서 흙이나 모래를 운반할 때 사용한다. 흙 속에 콘크리트 파편이나 철근 토막이 더러 섞여 인양 도중 천이 찢어지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원래 지게차를 사용해 옮겨야 하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주로 노조원이 아닌 타워크레인 조종사한테 일을 전가하는 게 관행이라고 건설노조는 설명했다. 이밖에도 조립된 철근을 크레인으로 통째로 인양하거나 트럭 위 철근·철골 상하역 작업, 기상 악화에도 작업강행 등이 위험작업으로 꼽힌다.
지난 4월 12일 경기도 하남시의 한 건설현장에서 조립된 철근이 타워크레인에 의해 인양되다가 무너지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제공.
위험 작업을 강요·지시한 건설업체를 묻는 말에는 52.15%가 ‘단종’(하청업체)을 꼽았다. 이어 ‘없다’(26.6%), ‘원청회사’(20.98%) 순이다. 타워크레인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는 타워크레인 ‘임대사’라고 답한 건 0.27%에 불과했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부당한 작업을 얼마나 강요받았냐’는 질문엔 ‘매일 수시로 받는다’가 34.03%로 가장 많았고, ‘주 5회 미만’(30.54%), 무응답(29.04%) 등이 뒤를 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건설현장에서 안전 관련 (관행이나 의식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엔 ‘전혀 없다’(35.39%), ‘없다’(32.35%)고 응답했다. ‘약간 바뀌었다’는 30.36%, ‘많이 바뀌고 있다’는 1.9%에 그쳤다. 노동자 과반은 변화를 여전히 체감하지 못하는 셈이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