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 주최의 ‘산입범위 개악과 최저임금제도의 왜곡 현실’ 토론회에서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김해정 기자
“2차 하청업체에서 자동차 범퍼를 만들고 있다. 회사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활용해 최저임금이 올라도 월급은 오르지 않게 만들었다. 그 결과 2021년부터 지금까지 시급 8천원을 받고 있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한국지엠 소속 김태훈씨는 몇년째 맨 밑바닥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는 월급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내 월급이 오른다’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깨졌다”며 “최근 직원 100명 중 60~70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왜 퇴사하냐’고 물어보니 저임금이라서 생계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답답해 했다.
한국공공사회산업노조 서울역사관리지부장으로 근무하는 이의영씨도 처지가 비슷하다. 이씨는 복지 제도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복지 포인트’가 월급에 포함돼 실질적인 기본급을 깎아내리는 상황이 황당하는 입장이다. “임금 구조를 설명하자면, 기본급과 식대 14만원, 1년에 2회 복지 포인트 25만 포인트와 명절 상여금 50만원이 전부다. 처음엔 용역에서 공무직으로 전환하면서 복지 포인트 등이 생겨서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말뿐인 복지제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있던 복지 3종 세트가 복지가 아닌 급여로 편입돼 기본급은 올라가지 않고 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 주최의 ‘산입범위 개악과 최저임금제도의 왜곡 현실’ 토론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들의 현장 증언이 쏟아졌다. 2018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2019년부터 매월 1회 이상 지급되는 식대·숙박비·교통비 등 복리후생비와 정기상여금이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에 산입돼왔고, 2024년엔 100% 포함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발제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이후 △최저임금보다 하락한 기본급 △직급별 기본급 역전 △최저임금보다 낮아진 통상임금 등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오 실장은 “산입범위 확대가 처음 적용된 2019년부터 곧바로 실질임금 하락 효과가 발생했다”며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기본급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졌다. 최저임금 범위에 식대가 포함되자 그만큼 기본급 인상 폭을 낮췄다”고 말했다. 오 실장은 “사용자들에게 산입범위 확대는 ‘최저임금이 올라도 기본급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이었다”며 “기본급은 낮게 유지한 채로 상여금과 수당을 적절히 활용해 최저임금 위반을 회피하는 다양한 꼼수를 개발했다”고 했다.
오 실장은 또 “본래 높은 직군일수록 기본급이 높았지만, 산입범위 확대 후 기본급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며 “최저임금 인상분을 임금인상에 반영하지 않으려고 ‘기본급+직무수당+식대’ 총액을 최저임금액에 맞췄다. 높은 직급보다 낮은 직급의 기본급 인상률을 더 높이면서 결국 모든 직급의 기본급이 같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식비가 최저임금엔 산입되면서 통상임금 범위가 최저임금 범위보다 좁아지게 됐다”며 “통상임금은 연장·휴일수당과 연동되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의 반발이 크다”고 했다.
지난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법 개정 논의를 지켜봤던 정길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노동수석전문위원은 토론회에서 “혼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왔다”며 “개인적인 생각과 무관하게 좀 더 상세하게 고민하지 못했던 책임을 가진 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일노동·동일임금’ 개정안과 관련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 지금 사업장 단위로 논의되고 있는데 이를 업종이나 산업별 단위로 확대하고 여기에 양대 노총이 직무평가에 참여하는 등의 주장을 양대 노총에서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제안한다”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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