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사내하청 노조 10년
송성훈씨 2003년 ‘끔찍한 기억’
월차 쓴다고 관리자가 칼부림
사내 첫 비정규직 노조 계기돼
해고무효 소송 3년…끝모를 싸움
송성훈씨 2003년 ‘끔찍한 기억’
월차 쓴다고 관리자가 칼부림
사내 첫 비정규직 노조 계기돼
해고무효 소송 3년…끝모를 싸움
그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다. 그의 불편한 걸음걸이는 마치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이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 같다.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장 송성훈(41·사진)씨의 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된 것은 지금부터 꼭 10년 전 벌어진 기막힌 사건 때문이다.
2003년 3월19일, 충남 아산시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병원의 한 병실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킬레스건이 잘린 30대의 청년은 피가 철철 흐르는 발목을 붙잡고 병상 위를 나뒹굴었다. 침대 옆에는 한 사내가 피묻은 과도를 들고 서 있었다. 아킬레스건이 잘린 청년은 당시 현대차 아산공장에 사내하청으로 갓 입사한 송성훈이었고, 과도를 든 남성은 그를 관리감독하는 하청업체의 과장이었다.
관리자가 직접 흉기를 들고 찾아와 ‘백주 테러’를 하게 된 것은 송씨의 월차휴가 때문이었다.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려 월차를 쓰겠다고 하자, 회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되레 관리자들은 그를 사무실로 불러 “네 마음대로 하려면 네가 회사 경영해라” 하며 멱살을 잡고 밀쳐냈다. 머리를 의자에 부딪힌 송씨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28일 아산시에서 만난 송씨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처음엔 문병을 온 줄 알았어요. 그런데 첫마디가 ‘원하는 게 뭐야? 돈이야?’ 이러더군요. 그러더니 이불을 걷으면서 ‘내가 편하게 해줄게’ 하더니 과도를 꺼내들었어요.”
이 사건 뒤로 송씨는 그동안 조심스럽게 준비하던 비정규직 노조 결성에 속도를 냈고, 열흘 뒤인 2003년 3월28일 현대차 내 첫 비정규직 노조가 출범했다. 아산공장이 물꼬를 트자 울산과 전주 공장에서도 연이어 사내하청 노조가 생겨났다.
송씨가 처음 공장 문을 두드린 건 노조 결성 여섯달 전이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갔는데, 처음엔 현대차 소속으로 일하는 줄로만 알았다. 면접을 공장 정문 앞에서 치렀다. 질문은 딱 하나였다. “오늘 밤부터 일할 수 있나?” 생활고에 시달리던 청년은 “그렇다”고 대답했고, 바로 그날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근무를 했다. 그래도 돈을 벌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한달을 가지 않았다. 노동자는 자동차의 부속품과 같았다. 테러 사건의 계기가 된 월차부터가 그랬다. 여유 인력을 절대로 두지 않는 하청업체의 특성 때문에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송씨는 동료들의 사례를 모아봤다. 계속 움직이는 라인 때문에 쓰레기통을 옆에 두고 소변을 해결하는 동료, 생리휴가를 가려 하자 ‘생리중’이라는 병원 진단서를 요구받은 여성 노동자, 면전에서 “너희들은 못 배워서 이런 일 한다”고 막말을 하는 관리직원까지,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 눈에는 우리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적어도 월차 같은 게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10년간의 치열한 투쟁의 의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조금이나마 개선된 점”이라고 송씨는 말했다.
10년 동안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2004년 5월 처음으로 노동부에 불법파견 집단 진정서를 낸 것을 시작으로 지난 20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므로 현대차 정규직이다”라는 판정을 받기까지 수많은 법적 싸움에서 이겨왔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 10년간 회사가 당기순이익을 5배 늘리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2명이 구속되고, 320명이 해고됐다.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탑에는 163일 전 올라간 최병승·천의봉 등 두 사내하청 노동자가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다. 이 와중에 하청업체들의 꼼수는 나날이 발전한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 일하고 무조건 1개월을 쉬게 하거나, 1~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 송씨의 지적이다.
왜 정규직화인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아산공장에서 25명의 비정규직이 해고됐다. 해고 1순위가 우리들이다. 사람을 방패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송씨는 대답했다.
회사 쪽의 폭력과 구속 등 험난한 10년을 버텨온 그이지만, 힘이 빠질 때가 있다.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회사 쪽 경영 논리만 옹호할 때다. 회사는 법원의 정규직화 판결은 소송을 낸 한두명에 해당하는 일일 뿐이라며,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신규채용’하겠다는 당근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조 쪽은 “2010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가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회사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규채용은 회사가 정규직화라는 법적 의무를 피해 가려는 술책일 뿐이라는 게 사내하청 노조의 시각이다.
“자동차는 생산공정이 효율화되거나 차량 모델이 변경되거나 생산 중지되면 하청업체 몇개씩이 하루아침에 폐업합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리목숨이지요. 내가 예전에 하던 ‘에프이엠 모듈’(자동차 앞부분 조립) 작업은 원래 열댓명이 하던 건데 지금은 2~3명이 해요. 이 과정에서 회사는 인건비를 아낄 수 있어 좋겠지만, 잘려나간 노동자들은 무엇을 먹고 산단 말입니까.”
송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도 해고노동자다. 2011년 3월 회사는 업무방해와 무단결근 등을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 중노위는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으나, 회사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끝날 기미가 없다. 모아 놓은 돈도 점점 떨어져간다. 투사의 이미지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순진한 얼굴을 가진 그의 애초 꿈은 출판사를 차리는 거였다. 원래 노동문제에 관심도 없었다. 우연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고, 거기서 느낀 분노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잘려나간 아킬레스건을 이어 붙인 의료용 튜브 때문에 불룩 솟아오른 종아리를 보면서 송씨가 말했다. “이놈이 가라앉을 때쯤이면 이 짓이 끝나지 않을까요?”
아산/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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